임실향교(任實鄕校)를 찾아간 날은 중복 다음 날인 7월 28일 한낮이었다. 틈을 내어 다니다 보면 한여름 더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임실향교(任實鄕校)는 임실군 임실읍 봉황 7길 23번지에 있다. 뒤와 양 옆이 작은 산으로 둘러싸여 포근함이 누가 보아도 명당자리다. 그래서 이 근방을 향교마을이라 부른다.
향교 앞에 이르니 “임실향교 6백주년 사적비(任實鄕校 六百周年
事蹟碑)“라는 큰 비석이 서 있다. 600년이면 조선왕조 518년보다 더 오랜 세월을 이곳에 서 있었다는 것이다.
마침 향교에 나와 있던 오세진 님이 친절하게 이곳저곳을 안내하여 주어 임실향교에 대하여 더 잘 알 수 있었다.
우선 눈에 띄는 곳이 한 가운데 우람하게 서 있는 명륜당(明倫堂)이다. 이곳은 향교에서 공부하는 학동들의 학습이 이루어지는 교실이다. 학문을 중하게 여겼던 시대라 학습하는 교실이 우람하고 육중하다. 하기는 여기는 지금으로 말하면 지방대학이다. 이곳에서 학습을 마쳐야 과거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명륜당 앞의 양쪽으로 동재와 서재가 있다. 이곳은 향교에 나와 공부하던 학동들이 머무르는 기숙사 같은 곳이다. 그런데 똑같지가 않고 약간 차이가 난다. 동재에서는 양반집 자녀들이 거하고 서재에는 일반 서민들의 자녀들이 머무는 곳이란다. 요즘 같으면 당장 시위가 벌어질 일이다.
명륜당 뒤쪽으로 가면 향교의 주축이 되는 대성전(大成殿)이 있다. 이곳에는 향교에서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본보기가 되는 성현을 모신 곳이다. 현재 임실 향교에는 공자를 비롯한 27위의 성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대성전 마당 한쪽에 큰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있다. 안내판에 보니 수령이 600년이다. 향교의 나이와 같다. 다른 향교에도 가보면 6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는 곳이 있다.
안내하던 오세진 님의 말에 따르면 오래된 은행나무가 서 있는 곳이라면 전에 향교가 있었을 가능성이 많은 곳이라 한다.
임실 향교는 조선시대 태종 13년인 1413년에 중국과 우리나라의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하여 배향을 하고 임실 지역의 자녀들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에 일부가 소실되었는데 그 후 여러 차례 보수와 중수가 이루어졌다. 철종 5년인 1854년에 김성근 등이 대성전을 중수하고 고종 6년인 1869년에 원세철이 명륜당을 보수하였다.
1879년에는 구연익이 대성전을 중수하였고 1883년과 1885년에 한기석이 서재와 동재를 중수하였다.
1907년에는 군민들이 뜻을 모아 전반적인 보수를 하였으며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 작업이 이루어졌다.
현재 임실향교에 남아있는 건물로는 3칸의 대성전과 4칸의 명륜당, 5칸의 동재, 4칸의 서재, 외삼문과 내삼문 등이 있다.
대성전(大成殿)은 정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에 겹처마로 되어있고 기둥은 두리기둥이다.
대성전에는 중국과 우리나라의 성현 27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데 중국 노나라의 공자를 비롯하여 그의 제자인 존칭을 안자라 부르는 안회, 증자라 부르는 증삼, 자사라 부르는 공급의 4명이 있고 추나라의 맹자라 부르는 맹가가 있으며 송나라의 도국공 염계인 주돈이, 예국공 정호, 낙국공 정이, 휘국공 회암 주희가 있다. 중국의 성현은 모두 9명이 임실향교에 모셔져 있다.
우리나라의 성현은 신라시대의 홍유후 빙월당 설총, 문창후 고운 최치원 두 사람의 성현과 고려시대의 문성공 회헌 안향, 문충공 포은 정몽주 두 사람이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문경공 한헌당 김굉필, 문순공 퇴계 이황, 문성공 율곡 이이, 그리고 호남 지방에서는 유일하게 향교의 성현에 들어가 있는 문정공 하서 김은후를 비롯한 14명의 성현이 안치되어 있다. 모두 27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안내하던 오세진 님이 담 밖을 가리킨다.
향교 안에 대성전이 있는데 밖에 또 하나의 대성전이 있다. 글자를 잘 보라하여 자세히 보니 향교 안의 대성전은 가운데 글자가 이룰 성(成)자이고 밖의 대성전은 성인 성(聖)자다.
밖의 대성전(大聖殿)은 단군왕검을 모신 성전이란다. 매년 10월 3일 개천절에는 이 지역 유지들이 모여 단군왕검께 제사를 드린단다.
뿌리 없는 나무가 없듯이 조상 없는 자손이 어디서 올 수 있으리오. 단군에 대한 자손으로서의 예우도 갖추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밖으로 나오니 들어갈 때는 벌로 보았던 붉게 칠한 홍살문이서 있고 한 쪽에 문묘중수사적비, 임실향교주수사적비, 임실향교 모성계 사적비 등 세 개의 사적비도 서 있다. 아는 것만큼 보인다 했던가? 들어갈 때에는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들어갔기에 보이지 않았던 문밖의 사적비가 보이는 것이다.
향교 앞의 골목길 긴 벽에 수백 명의 얼굴들이 빼곡히 그려져 있다. 문화재청 살아 숨 쉬는 향교 서원 활용 사업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라 한다.
임실향교를 이용해서 문화재청에서 행사를 한 결과물인 듯한데 거기에 “이 게시대는 문화재청 향교 서원 활용 ”어이~ 유생(儒生), 유생(乳生)!“ 프로그램 가운데 향교 골목길 가꾸기에 참여한 분들의 작품입니다”라는 문화재아웃리치연구소에서 주관하고 문화재청에서 주최한 결과물이라는 안내문이 있다.
향교와 관련하여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