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마음, 보내는 마음 여기에 남겨두고

임실 오수 신기 마을의 체리암(滯離巖)

작성일 : 2022-08-03 16:43 수정일 : 2022-08-26 08:56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사람이 살아가면서 사람을 보내는 일과 사람을 두고 떠나는 일은 큰일 중의 큰일이었다.

그래서 정현종 시인은 그의 시 「방문객」에서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라고 썼다. 그러나 헤어진다는 것도 어마어마한 일이다.

 

예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이별을 소재로 글을 썼고 노래를 불렀다.

만고의 명작으로 꼽히는 고려시대의 시인 정지상의 시 송인(送人)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大同江水 何時盡(대동강수 하시진)

別淚年年 添錄波(별루년년 첨록파)

대동강 물이야 언제 마르랴

해마다 이별 눈물 보태는 것을…

 

우리 고장에도 대동강 물처럼 마르지 않을 냇가가 있고 정자가 하나 있다. 임실군 오수면 둔덕리 신기마을 앞에 있는 체리암(滯離巖)이 바로 그곳이다.

“성, 오수 체리암 한 번 가보 슈.”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님의 전화다.

나를 잘도 데리고 다니더니 날씨가 워낙 더워서인지 말로만 알려준다.

당장 가보아야 하는데 누구랑 갈까 망설일 때에 척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오수 도서관 시낭송반 수강생인 균자 언니. 그도 말만 하면 언제나 OK다.

그와 함께 체리암에 도착하니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정자가 시원스럽다. 이름이 바람으로 목욕을 한다는 풍욕정(風浴亭)이다. 바람으로 목욕을 한다는 곳이니 바람이 시원한 곳임이 틀림없다.

 

그런데 그 정자를 받치고 있는 바위가 예사 바위가 아니다. 이름이 체리암(滯離巖)이다. 막힐 체(涕) 자에 떼어놓을 리(離) 자니 이별을 막는 곳인데 그렇다고 이별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잠시 미룬다는 뜻이다.

이곳은 옛날에 이 근방 사람들이 가족이나 일가친척들을 멀리 떠나보낼 때에 여기까지 배웅을 나와서 잘 가라고 이별을 했던 송별의 바위였다. 이곳에서 아쉬운 작별을 했고 눈물도 흘렸으리라. 어쩌면 이곳에서의 이별이 이생의 마지막이 된 사람도 있으리라. 

 

 

그런데 전라선 철로가 놓여 지면서 많은 자갈이 필요해지자 인근의 바위들을 깨뜨리기 시작하였다. 신기리 마을 앞의 냇가에 놓여 있는 체리암도 철로 자갈의 위기를 모면할 길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신기리 이환우 씨가 인근 사람들을 설득하여 체리암을 보호하기 위하여 바위 위에 정자를 세우고 풍욕정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1913년을 전후한 시기에 마을 사람들이 세운 정자라고도 한다.

 

1970년대에 하천 정비 사업을 하면서 체리암이라 쓰여진 글자가 제방에 묻혀 버리고 정자만 보였던 것을 후에 흙을 긁어내어 글자가 보이게 하였다고 한다.

제방에 묻히기 전에는 굽이쳐 흐르는 물길이 깊어 소의 길이가 서너 길이었으며 바위의 높이가 10여 미터에 달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제방이 냇물과 풍욕정을 갈라놓고 체리암도 한쪽이 제방에 묻혀 물가에 놓인 바위가 아니라 논 모퉁이에 있는 바위가 되어버렸다. 주변이 풀만 자욱하여 체리암이라는 글씨는 보이지도 않는다.

 

최명희의 혼불에도 체리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체리암은 동구 밖에서 한참거리인 오 리 바깥으로 나간 길목에 큰 내를 낀 갈림길 어귀를 지키고 있는 커다란 바위다. 매안 이 씨 문중에 손님이 왔을 때 헤어지기 몹시 서운하여 떠나는 길의 발걸음 동무를 하면서 따라 걷다가 차마 떨치기 어려운 소맷자락을 아쉽게 서로 놓고 ‘자, 이제는 여기서 헤어지자’고 명표(銘標)를 해놓은 이 바위의 글씨는 이 씨 문중의 몇 대조 할아버지께서 몸소 쓰시어 음각한 것이라 하였는데 머물 사람은 남고 갈 사람은 떠나는 바위라고 한다.”

 

보내는 사람과 떠나는 사람의 마음이 교차하는 체리암과 그 아쉬운 마음을 바람으로 씻어주려는 풍욕정이 함께 있는 이곳에는 엊그제 또 누가 떠나면서 안타까운 이별을 했는지 그 안타까움을 씻어내려는 바람이 그치질 않고 시원하게 불고 있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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