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모레가 칠월 백중(百中)이다.
내일 저녁이면 백중에 먹을 전을 부친다.
칠월 백중이 오면 백중 전날 밝은 달빛 아래에서 마당에다 솥뚜껑을 엎어놓고 전을 붙였던 어머니와 누님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 옆에서 멍석을 깔고 함께 전을 먹었던 아버지와 동생들이 생각난다.
당시에 먹을 것도 부족하던 시대였지만 명절 음식은 부족함이 없게 풍족하게 준비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이웃 사람이 우리 집에 오면 듬뿍듬뿍 내놓았던 기억이 새롭다.
금방 밥을 먹고 온 사람에게도 먹던 밥숟가락을 치맛자락으로 쓱싹 닦아 밥 먹으라고 내밀던 것이 기억난다. 배고프던 시대의 사람들이었지만 이웃 사람들에게 넉넉했고 옹색하지 않았던 그 때 그 사람들이었다.
칠월 백중은 음력 7월 15일로 백중(百中), 백종(百種), 중원(中元), 망혼일(亡魂日), 우란분절(盂蘭盆節)이라 하고 우란분재(盂蘭盆齋)를 올렸다.
칠월 백중은 천상의 선관(仙官)이 일 년에 세 번 인간 세계를 살피는데 이를 삼원(三元)이라 하였으며 삼원은 정월 대보름인 1월 15일을 상원(上元)이라 하고 칠월 백중인 7월 15일을 중원(中元)이라 하며 시월상달인 10월 15일을 하원(下元)이라 하였다. 그래서 이때에는 음식을 장만하여 천신께 올리는 날로 정하고 조상의 사당에도 올리는 천신(薦新)을 했다. 백중에는 여름에 나는 온갖 열매로 차린 음식을 차려 제를 올렸다.
백중은 불가와 관련이 깊은데 부처님의 제자 목련(目連)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참회하는 의식인 자자(自咨)를 끝내고 청정해진 눈으로 바라보니 그의 어머니의 영혼이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목련은 부처님께 구원을 청하였는데 부처님께서 칠월 백중에 다섯 가지 맛을 내는 백 가지의 열매인 오미백과(五味百果)를 공양하라는 말에 따라 우란분회를 열어 공양을 했다는 고사에 따른 것이며 불교의 5대 명절 중의 하나로 지켜지고 있다.
우란분재(盂蘭盆齋)는 인도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중국에서는 양나라 때에 무제가 동태사에서 처음 실시한 후 여러 왕들이 따라서 행하였다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시대부터 행하여졌다.
백중날에 각 사찰에서는 죽은 이를 위해 불단에 위패를 세우고 제를 지낸 뒤 그 위패를 불사르는 의식을 했다. 가정집에서 제사가 끝난 뒤 지방을 불사르는 일과 똑 같은 일이었다.
백중날이 되면 주인은 머슴들에게 용돈을 주어 사고 싶은 물건을 사게 했으며 하루를 쉬면서 놀게 했다. 그래서 백중날을 머슴날이라고도 했고 그날 열리는 백중 장날은 성시를 이루었다. 이때가 농사일이 끝나가는 시기여서 논에 김매기를 마치고 호미를 씻어 농기 창고에 걸어놓는다 하여 호미씻이, 호미걸이 날이라고 불렀으며, 머슴들에게 술을 먹여 놀게 하는 날이라고 술멕이 날이라고도 불렀다. 사람들은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보냈다.
우리 조상들은 일을 열심히 하면서도 틈틈이 쉬는 날을 만들어 쉬면서 즐기는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줄 알았다.
백중 행사는 불교가 성황 하던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는 절에서 행하던 우란분재(盂蘭盆齋) 시에 일반인들도 참가하는 큰 행사로 치렀는데 조선시대에 와서는 절에서만 행하는 행사로 축소되었다.

칠월 백중의 대표적인 음식은 전이다. 그때에 나오는 호박전이나 깻잎전, 가지전, 풋고추전은 무더운 여름에 땀을 많이 흘려 부족한 기름기를 보충하고 비타민이나 미네랄까지 보충해주는 역할을 했던 것이며 기름에 튀겨서 상하지 않는 음식으로 호감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백중 전날의 밝은 달빛 아래에서 가족들이 둘러앉아 먹던 전이야말로 지금은 가고 없는 사람들의 모습까지도 생각나게 하는 가장 맛있는 여름 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