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큰 행사 때마다 길을 여는 전주 기접놀이

전주 지역 마을들의 공동 놀이패들의 합동체

작성일 : 2022-08-12 04:20 수정일 : 2022-08-31 17:18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오늘이 백중날이다.

오늘 전주의 서쪽인 우전들과 난전들 사람들은 전주 기접놀이 전수관에 모여 수백 년 전 우리 조상들이 울렸던 농악소리에 맞춰 웅장하고 장쾌한 용기를 흔들며 전주 기접놀이를 펼치는 날이다.

전주 기접놀이패들은 매년 백중날 그곳에서 기접놀이를 즐겼고 전주에서 큰 행사가 열릴 때마다 온 동네가 떠들썩하게 길을 열어주는 일을 해왔다.

 

전주 기접놀이는 전주 서쪽인 우전들과 난전들 사람들이 기를 가지고 노는 합굿매기의 한 과정인데 용기놀이의 또 다른 이름이다.

합굿매기는 7월 백중에 열리는 놀이인데 한 해의 주요 농사인 벼농사의 일을 매듭짓고 노고를 위로하고 풀기 위한 놀이로 발전하였다. 이를 '칠월 백중놀이' 또는 '술메기'라고도 불렀다.

 

우리나라 제일의 너른 벌판을 가지고 있는 전라북도는 마을마다 농악을 하였으며 이때에 쓰던 기를 가지고 있었다. 농기놀이는 농악과 함께 이루어졌는데 기를 가지고 노는 재미에 빠진 사람들의 호응이 좋아지자 기를 가지고 노는 놀이로 발전한 것이다.

 

전주 기접놀이가 삼천을 중심으로 전승되어 온 것은 이지역이 넉넉한 물을 이용하여 벼농사를 잘 지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삼 년 가뭄에도 삼천에서는 쌀밥을 먹는다”는 말이 전해 내려올 만큼 기름진 곳이었다.

 

 

기록에 의하면 난전의 중심 마을인 중평 마을의 기가 1895년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석구리 용기는 1925년에 제작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마을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선친들의 말씀을 빌어 기접놀이 기가 이용된 것이 적어도 200년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기접놀이가 시들해졌으며 우전들의 중심 마을이었던 중평마을에서 벌어졌던 합굿매기와 용기놀이가 1956년에 있었고 그 후에는 열리는 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하였다.

 

여러 마을에서 각각의 이름으로 벌어졌던 기접놀이의 명칭이 전주 기접놀이로 통일 된 것은 전북일보 기자인 문치상의 공로가 크다.

문치상 기자가 1974년에 열렸던 전주 계룡리 네 개 마을의 기접놀이 공연 때 그동안 용기(龍旗)놀이. 기전(旗戰)놀이, 기점(旗點)놀이, 농기(農旗)놀이로 불리우던 것을 전주 기접놀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에서 비롯된다.

문치상 기자는 전주지역 기놀이의 민속적 가치를 발굴하고 재현 보급시키는데 많은 노력과 성과를 거두어 냈으며 1998년 이 지역 출신인 심영배 시의원의 노력으로 계룡리 마을이 중심이 되어 전주 기접놀이 보존회가 결성되어 전주를 대표하는 민속놀이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전주 기접놀이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63호로 지정되어 보존하고 있으며 처음 전주 기접놀이 보존회를 창립할 당시에는 연습할 장소가 없어 비닐하우스에서 어렵게 연습하며 명맥을 이어오다가 이제는 좋은 시설을 갖춘 전주 기접놀이 전수관에서 연습을 하게 되었다.

 

전주 기접놀이 전수관은 2021년 4월 30일에 개관을 하였으며 2,646제곱미터의 넓은 터와 770여 평의 대지 위에 4동의 한옥과 공연장을 갖추고 있다.

전주 기접놀이 전수관은 전주가 우리나라의 5대 국가관광 거점도시로 지정된데 일역을 하였으며 전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전주의 문화를 알리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오늘이 칠월 백중.

전주 기접놀이는 매년 백중날에 정기적으로 기접놀이를 재현하고 있다.

전주 삼천동 삼천 변에 있는 전주 기접놀이 전수관에서는 한바탕 전주 기접놀이가 신명 나게 펼쳐질 것이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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