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광한루(廣寒樓) 국보가 된다

전국적으로 가장 오래되고 넓은 광한루원

작성일 : 2026-06-20 17:37 수정일 : 2026-06-22 08:46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우리나라 고전 중 첫손가락에 꼽히는 것이 춘향전이다.

조선시대 한글 소설로써 가장 널리 익히던 소설이요, 가장 많은 화제를 몰고 다녔으며 영화, 연극, 판소리, 무용 등 수없이 많은 예술 작품의 모티비가 되었던 것이 춘향전이다.

 

춘향전의 배경이 된 곳이 바로 광한루다.

단오날, 남원 사또 자제인 이몽룡이 방자를 데리고 광한루에 바람 쐬러 왔다가 그네를 타던 기생의 딸 성춘향을 만나 지고한 사랑을 나눈다는 이야기가 광한루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한글소설을 대표하는 춘향전 배경이 되었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광한루 

 

그 광한루가 그동안 보물로 지정되어 있었는데 국가 지정 문화유산인 국보가 된다.

금년도 424, 국보 지정을 공식 예고했다.

이후 예고 기간 30일 후에 심의를 거쳐 국보로 지정된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남원 광한루는 조선 후기 목조건축의 특징인 화려한 장식과 함께 익루의 온돌, 월랑의 계단 등 실용적 요소가 결합한 목조건축유산이며 건축사적 가치와 함께 명승지로 지정된 광한루원의 정원유적과 어우러져 빼어난 예술적 가치를 갖고 있다고 국보 지정 배경을 설명했다.

 

  광한루는 이제 국보로 승격된다. 

 

광한루는 2023년에 국보 지정 신청을 했었다.

그때는 본루인 광한루와 익루의 건축 시기 불일치 가능성이 제기되며 국보 지정이 한차례 보류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이에 남원시에서는 주요 목재 부재에 대한 정밀 분석을 실시하였고, 그 결과 본루와 익루가 1626(인조 4)에 함께 중건되었음을 입증하였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국가유산청은 광한루의 뛰어난 역사, 건축,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여 금년도인 2026424일 남원 광한루의 국보 지정을 공식 예고하게 되었다.

 

 

광한루가 있는 광한루원(廣寒樓苑)은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요천로 1447번지에 자리 잡은 문화유산이다.

광한루원은 신선이 사는 이상향을 구현한 독창적인 공간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통 누원이다.

월궁으로 불리는 완월정 앞에 달 조형물이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광한루원은 광한루를 중심으로 영주각, 완월정, 방장전, 월매집 등 10여 동의 건축물과 약 2,000여 평에 이르는 연못 및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오작교가 있는 명승지다.

 

호남제일루의 위용을 자랑하는 국보 '광한루'

 

광한루원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광한루.

광한루(廣寒樓)는 평양 부벽루,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손꼽히는 우리나라 4대 누각 중 하나다.

 

 광한루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4대 누각 중의 하나다. 

 

정면에는 1885년 남원부사 이상억이 쓴 '湖南第一樓(호남제일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말 그대로 '호남에서 가장 뛰어난 누각'이라는 뜻이다.

 

광한루는 1419년 황희 정승이 지은' 광통루'에서 시작되어, 1444년 정인지가 그 아름다움에 반해 '광한루' 라는 이름을 붙여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정유재란으로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1626년 재건된 이후 약 40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대로 보존되어 왔다.

조선 중기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건물이다.

 

광한루는 하나의 건물이 아니라 복합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큰 몸체인 본루, 본루 옆에 덧붙여진 날개 같은 익루, 그리고 본루로 올라가는 계단실인 월랑이 하나로 연결된 건물이다.

  광한루가 있는 광한루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넓은  관영정원이다.

 

광한루에 숨겨진 특별한 가치

 

1. 우리나라 누정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대형 누각이다.

1626년 중건 이후 약 400년 동안 그 원형을 유지해 오고 있다.

2. 본루, 익루, 월랑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복합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구성 방식은 조선 건축사에서 독보적이며 기능과 안정성을 동시에 잡은 설계로 평가된다.

3. 누각에 온돌을 설치한 희소한 사례다.

당시 문인들이 추운 겨울에도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든 특별한 공간이다.

4. 조경과 건축이 완벽하게 조화된 공간이다.

광한루 주변으로 연못, 오작교, 삼신산이 배치되어 조선의 우주관과 신선 사상을 구현하고 있다.

5. 광한루는 하나의 작은 문학관이다.

건물 내부에 무려 83개의 현판과 180여 편의 시가가 남아 있다.

특히, 김종직, 정철, 정인지 등 조선 최고의 선비들이 이 누각에 올라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남원 광한루는 조선 후기 호남지역을 대표하는 대형 관영누각으로, 호남제일루(湖南第一樓)라 불린다.

조선 초기 명재상 황희 정승(1363~1452)이 남원에 유배되어 세운 광통루가 기원으로, 관리들의 연회와 시회가 열리는 공간으로 이용했다. 주변의 호수와 3개의 섬(봉래섬. 방장섬, 영주섬), 오작교는 전라도 관찰사 송강 정철(1536~1593)과 남원부사 장의국이 조성했다고 한다.

 

광한루는 1597년 정유재란으로 불타버렸다.

그것을 인조 4년인 1626년에 남원부사 신감이 지금과 같은 규모로 재건했다. 그후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쳤다. 이러한 사실이 상량문, 기문, 읍지, 기사 등에 기록이 되어 있다. 

이후 별다른 변화 없이 400여 년을 그대로 유지해온 것이다. 

 

남원을 대표하는 문화재인 광한루가 이제 국보로 승격됨에 따라 광한루에 대한 인식도 달라질 것이다. 

이를 더 잘 보존하고 빛나게 하는 것이 남은 사람들의 책무이고 사명일 것이다.  

 

 

 

 

 
이용만 기자 ym60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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