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역 뒤 장재동 지우산 기능자 거주 마을
전주역에서 기차를 타기 위해 프래트홈에 서면 멀리 동쪽으로 운장산이 장엄하게 솟아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종남산이 아담하게 서 있다.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전주역 바로 뒤의 울타리 너머에 있는 소문난 마을은 모르고 있다.
이 마을이 오랜 동안 전주의 한지를 이용하여 지우산(紙雨傘)을 만들어오던 우산공들이 모여 살았던 전주 미래유산 제11호인 장재마을이다.
전주역에 가리어 보이지도 않는 장재마을을 찾아갔을 때에는 삼복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는 8월 중순이었다. 전주역 커다란 울타리 뒤에 숨어 있는 곳인데 마을 한가운데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고 그 아래 정자가 아담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마침 그 정자에서 이 마을 어르신 몇 명이 막걸리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 정자 아래 바위에 “장재마을”이라는 글자가 새겨 있고 그 옆에 두 개의 안내판이 서 있었다. 하나는 마을 안내도였고 또 하나는 ‘전주 미래유산 제11호’의 안내판이었다.
“이곳은 전통 우산을 만들던 마을이다. 현재의 비닐이나 천 우산과 달리 과거에는 기름 먹인 종이인 유지와 대나무를 이용한 지우산을 수작업으로 만들었다. 우산은 가내 수공업과 공장 형태의 작업장에서 만들었으며 주변 지역에서 이곳에 일을 하러 많은 사람들이 오곤 하였다.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우산장 윤규상 기능 보유자도 이곳에서 우산 제작 기술을 배웠다.”
이 장재마을이 우리나라의 유일한 종이우산 제작 기능보유자인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45호인 윤규상이 우산 만드는 기술을 익히던 곳이라 한다.

전주의 전통 우산 기능공들이 살았던 전주역 뒤의 장재마을
윤규상은 1941년 완주군 용진면 상삼 마을에서 태어났다. 열여섯 살 되던 해에 강 건너 장재마을에 있는 우산공장을 다니기 시작한 것이 우산 장인이 된 계기가 되었다. 스물다섯 살 때에는 직공 10여 명을 거느리는 공장을 차렸다. 기술이 좋아 전국적으로 우산이 잘 팔려나갔다. 한 때는 우산 공방이 서른 개가 넘었는데 지금은 윤규상 씨 공방 하나만 남아 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우산 사업이 괜찮았다. 그런데 그 후 비닐우산이 등장하면서부터 지우산(紙雨傘)이 사양길로 접어든 것이다. 지금은 지우산은 예술품이나 공예품 등 장식용으로 나간다.
우산(雨傘)은 글자 그대로 비 올 때에 사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가 오지 않을 때에 쓰는 것은 우산이 아니라 양산(陽傘)이라고 한다.
우산의 최초의 기록은 이라크의 아카드에서 BC 2334~2279년에 사르곤 왕 때 뜨거운 햇볕을 가리기 위하여 사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에서는 6세기경에 우산을 만들어 썼는데 이때에 이미 접을 수 있는 우산이 나왔다고 한다. 기름종이 우산은 중국에서 처음 만들어 썼다
요즘은 특이한 우산이 나오고 있다. 2인용 우산이 나오는가 하면 삿갓 우산, 커튼 우산, 거꾸로 우산, 캐릭터 우산, 장식용 우산이 나오고 있다.
전주에서 만들어지는 지우산은 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 질 좋은 재료와 공력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대나무를 말리는데 몇 달이 걸린다. 그리고 대와 살과 꼭지를 손으로 깎는다. 작은 부속품을 일일이 짜 맞추는데 아귀가 딱 맞아야 한다. 질 좋은 한지를 써야하고 끓인 들기름을 발라 막을 입힌다. 그래야 빗물이 닿으면 스며들지 않고 통통 튄다. 그리고 멋을 내어야 한다.
그러자니 지우산 하나 만드는데 많은 시간과 공력이 들어간다.
우산 만드는 기능공들이 모여 살았던 장재마을은 아중천 산책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장재교 다리가 있는 곳에 이른다. 다리에서 좌회전하여 전주역 쪽으로 들어오면 된다. 전주역 바로 뒷마을이다.
전국적으로 지우산 기능 보유자는 윤규상 단 한 사람밖에 없다.
부채의 경우 기능보유자가 차고 넘친다. 하기는 부채는 전라감영에 선자청(扇子廳)이라는 기관이 있었다. 해마다 단오 무렵이면 왕에게 진상을 했다. 왕은 그것을 단오선(端午扇)이라 하여 신하들에게 나누어주기까지 했다.
부채의 경우 국가 무형문화재 제128호 선자장 김동식을 비롯하여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10호 선자장 방화선, 엄재수, 박계호, 태극선 명인 조충익, 전북무형문화재 51호 낙죽장 이신입, 명예보유자 박인권, 전주부채 장인 박상기, 이정근이 있고 대를 이어 전주부채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선자장 김동식, 이수자, 김대성, 방화선, 송서희 등이 있으며 그밖에도 많은 기능보유자가 있다.
그러나 우산의 경우는 전국에서 윤규상 기능 보유자 혼자다. 그나마 후계자가 없어 고심을 했으나 최근에 아들인 윤성호가 기능을 이어받겠다고 하여 지금 기술을 수련 중이라 한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이렇게 명맥이 끊어져 가고 있는 분야의 기능을 전수한 사람에게는 국가에서 대폭적인 지원을 해서 명맥을 이어가게 했으면 어떨까? 멸종되어가는 동식물들은 보호종으로 지정하여 보호하는데 사람의 경우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기능을 이어가겠다는 사람에게 국가에서 생활에 지장이 없도록 지원을 해주어서 기능을 살려나가야 할 것이다. 국가에서 안하면 지자체에서라도 지원을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면 개인은 물론 지방이나 국가 브랜드도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