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500 명의 양민 집단 학살 지역
전북 임실군 청웅면 남산리 산 89번지
그냥 평범한 어느 산의 지번이 아니다.
적어도 1951년 3월 14일, 그날만은 이곳이 보통의 산의 지번이 아니었다. 그날 이곳에서는 수백 명의 혼이 가슴에 한을 안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곳은 광산이었다. 폐광이 되어 방치했던 그냥 굴이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남아 있는 공산군들의 행패와 그들의 요구를 어쩌지 못하는 주민들을 적에 동조했다고 보는 우리 국군과 경찰 사이에서 목숨이 백척간두에 선 양민은 이중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공산군이 아닌데도 그들의 총부리 앞에서 먹을 것을 내어준 것뿐인 양민들도 공산군 협력자 취급을 받는 상황이었다. 국군과 경찰이 조사를 나온다는 말을 들은 남산리 주민들은 우선 무서움에 굴속으로 들어가 숨었다. 이를 공산군이거나 이에 동조하는 무리로 인정하고 굴속 소탕작전을 벌인 것이다.
굴속에 공산 유격대와 협력패들이 있다는 정보를 받고 국군 제11사단 13연대 2대대 병력과 임실경찰서의 전투경찰과 반공청년단체인 향토방위대 등이 32개의 굴 입구 중 28개를 폐쇄하고 4개 굴 입구에 고춧대와 생솔가지를 쌓아놓고 불을 지르고 연기가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오소리 작전을 전개했다. 그 작전은 3일간이나 계속되었다. 굴속에 숨어 있던 수백 명의 마을 사람들이 연기로 질식사했다. 거기에는 빨치산들도 있었지만 일반 양민들도 많았다.
국립묘지 임실호국원에서 경내에 지하 토굴 200m를 구축하여 일부 출입이 가능하게 하였다.
굴속에서 죽은 자들을 매장했으리라 짐작되는 지점에 안내판이 하나 서 있다. 그리고 이렇게 쓰여 있다.
임실군경 토벌사건 희생지
이곳은 1951년 3월경 임실군 일대에서 공비토벌 작전 중이던 군인과 경찰에 의해 청웅면 남산리 폐광에 피난해 있던 임실 및 인근지역 주민 300~500여 명이 불법적으로 집단 희생된 지역으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국가 차원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유해 매장 추정 지번
전북 임실군 청웅면 남산리 산 89-1번지 폐광
전북 임실군 강진면 백련리 산 112번지 폐광
위 장소는 1951년 한국전쟁 시기에 발생한 임실 군경토벌 사건의 민간인 집단희생 유해 매장 추정 지역이므로 함부로 훼손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2008년 9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 ‧ 임실군수
똑 같은 안내판이 임실군 강진면 회전리 153번지 맷골에도 있다.
“성, 안내판 뒤 밭에 한 번 가 보슈.”
수박 겉핥기로 안내판만 보고 가려는 나를 돌아 세운 사람은 취재 도우미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님.
안내판 뒤로 돌아가 보니 넓은 감자밭이다. 이곳이 남산 폐광에서 연기로 질식사한 사람들의 시체를 매장했을 것이라 짐작되는 곳이란다.

남산 광산에서 죽은 자들의 매몰지로 추정되는 감자밭
전쟁 통에 죽은 자들을 묻었으니 깊이 묻지도 안했을 것인데 팻말을 세운 지가 15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발굴을 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으니 진실‧화해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뭐 하고 있는 것인가. 하루빨리 발굴을 서둘러서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어 묘를 만들고 제사를 지내게 해야 할 것이다. 그대로 세월만 보내고 있는 것은 또 한 번의 학살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국전쟁으로 인한 양민 학살은 곳곳에서 일어났다. 집단으로 일어난 대형 학살 말고도 소소하게 일어났던 학살 사건은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죽은 사람들의 유해는 곳곳에 묻혀 발굴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형무소가 있었던 전주 주변에는 그러한 곳이 여러 곳에 있다.
전주에서 소양 쪽 금상동으로 넘어가는 솔개재에도 있고 인후동 한국전력 뒤에도 있으며 황방산에도 있다.
전북에는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원산마을 양민 학살 사건이 있다. 당시 면소재지였던 원산 마을에서는 빨치산과 국군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공무원이라는 신분 때문에 밤에는 빨치산이 와서 잡아다 죽이고 빨치산에 협조했다고 낮에는 국군이나 경찰이 와서 잡아갔다. 그런데 비극의 현장은 지금 동상 저수지가 막아지면서 저수지 물속으로 들어가 있어 더욱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익산역 폭격 사건도 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 폭격기가 익산역에 폭탄을 투하하여 400여 명이 희생된 것이다.
가장 피해가 많았던 지역은 형무소가 있는 전주 지역이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나서는 적에게 동조할 우려가 있다고 형무소 안에 수감되어 있던 사람들을 학살했고 공산군이 들어와서는 후퇴하기 전에 또 수감자들을 학살하였다. 그 수가 2,000여 명에 이른다.
그리고 고창군 공음면 양민 학살 사건도 있다.
전쟁은 무서운 것이다. 모든 것들을 빼앗아 가버린다. 그리고 그 상흔은 세월이 가도 지워지지 않고 깊게 남는다.
특히 양민 학살 사건은 그들이 죄 없이 공산당이나 빨치산이라는 누명까지 쓰고 있어 하루빨리 진상이 밝혀지고 시신 발굴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