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무형유산원 건너가는 오목교에 28기 설치
왕은 왕이다.
그는 보통 사람들하고는 다르다.
그는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하며 모든 사람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그러기에 왕이 한 번 행차를 하면 산천초목이 다 떤다.
왕의 행차 길에는 모든 백성이 머리를 숙이고 부복해 있어야 한다. 감히 고개를 들었다가는 목이 달아난다.
왕이 행차할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전주천 다리 가운데 오목교가 있다. 오목대 쪽에서 전주천을 건너가는 다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듯하다.
그런데 거기 다리 양쪽 난간에 평소에는 볼 수 없는 깃발이 나부끼고 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보기 힘든 귀한 깃발이다. 왕의 행차 시에 들고 가는 깃발인데 깃발의 수가 많기도 하고 모양도 다양하며 화려하기도 하다. 저 깃발들은 무엇을 의미하며 어느 위치에서 왕을 호위하고 있었을까?
왕의 행차 시에 왕의 권위와 근엄함을 상징하였던 깃발은 조선시대를 중심으로 28기였으며 용도와 상징이 달랐다. 28기는 양쪽으로 늘어서기 때문에 14종이라고 보아야 한다.
왕의 행차 시에 의장기가 맨 앞에 나아간 것은 아니다.
맨 앞에는 거동 책임자인 도가가 앞장서고 그 뒤를 전체 호위를 맡는 선상군병이 따랐으며 다음은 앞부분 시위담당인 가전시위가 뒤를 이었다. 그리고 의장기가 뒤를 따랐다.
먼저 왕을 상징하는 홍색 바탕에 청룡을 그린 ‘홍문대기’ 깃발이 앞장섰다. 이 깃발은 왕의 행차 시에 양쪽 선두에 배치했다. 왕이 지나가는 신성한 길임을 나타내는 깃발이다.
뒤를 이어 왕의 위엄과 역동성을 나타내는 ‘오방기’가 뒤따른다. 오방기는 동서남북과 중앙을 말하며 ‘황룡기’는 중앙을 나타내는 깃발이다. ‘청룡기’는 동쪽을 상징하는 깃발이며 ‘백호기’는 서쪽을 상징하고 ‘주작기’는 남쪽을, ‘현무기’는 북쪽을 상징한다.

오방기에 이어 ‘정미기’가 따른다. 정미기의 부적이 지닌 주술의 신비한 힘을 표방하는 깃발로 정미는 양을 상징한다.
‘정축기’는 소를 상징하며 정축기의 부적이 지닌 주술의 신비한 힘을 표방하는 깃발이다.
‘백학기’는 몸 전체가 흰색이며 위쪽의 붉은 색으로 단정학을 그린 깃발이다. 행복, 길상, 장수, 충정을 나타낸다.
‘삼각기’는 전설 속의 동물인 삼각수를 그린 깃발이다.
‘백택기’는 전설 속의 동물인 백택을 그린 깃발이다. 백택(白澤)은 중국에서 덕 있는 임금이 처세를 잘 했을 때에 나타나는 고양이과의 신령한 동물로 얼룩말, 기린, 하마, 멧돼지 등을 잡아먹을 만큼 사나운 동물이라 한다.
‘가귀선인기’는 거북의 등에 올라탄 신선의 모습을 그린 깃발이다. 무병장수를 상징한다.
‘후전대기’는 맨 뒤에 선다. 행차의 뒤를 옹호하는 깃발이다. 흑색 깃발로 청룡을 그린 것과 연무를 그린 것의 두 가지가 있었다고 한다.
한 가지 빠진 것이 있다. ‘기린기’다. 이 기린기는 왕의 행차에 사용하지 않고 왕세자와 왕 세손의 행차에 사용되었던 깃발이다.
왕의 행차는 많은 인원과 막대한 비용이 들기 때문에 자주 있었던 일은 아니다. 조선의 왕들 가운데 행차를 자주하였던 왕도 있고 거의 나가지 않은 왕들도 있었다.
세종, 세조, 영조는 자주 궐 밖으로 행차를 하였으며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이 있는 수원성에 자주 행차하였다.
반면 선조는 임진왜란 이후에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며, 인조도 병자호란 이후에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목교는 2017년 9월에 개통한 다리다. 한옥마을 오목대 부근에서 국립무형유산원으로 건너가는 다리다. 태조 어진 곤룡포에서 용의 모습을 새겨 다리를 만들었다. ‘오목교’라는 다리 이름은 서예가 백담 김종희의 글씨다.
그 다리에 화려한 왕의 행차 때에 볼 수 있는 의장기가 펄럭이고 있다.
왕이 되고 싶은 자, 오목교를 건너보라. 왕처럼 당당하게 걸어보라. 왕의 행차 때에만 펄럭이던 의장기 속을 걸어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자존감은 왕처럼 높아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