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머리 고개는 일제강점기 때에 완산칠봉 용두봉의 용의 목을 잘라 만들어 놓은 고갯길이다.
김제나 정읍을 가는데 이곳으로 가지 않아도 얼마든지 갈 수 있는데 일부러 이곳으로 길을 내어 용의 기운을 끊으려 했다.
지금의 예수병원 쪽의 선너머 길이나 강당재로 가도 얼마든지 김제나 정읍을 갈 수 있다. 그런데 굳이 용머리 고개를 만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 여러 개의 대장간을 만들었다. 시끄러운 쇳소리를 내어 용이 잠들지 못하게 함으로써 용의 기운을 빼려 한 술수였던 것이다.
지금도 용머리 고개에는 서너 곳의 대장간이 있다. 간판마다 오랜 역사를 가진 전통적인 대장간이라 하고 문화재 수리 기능 보유자 제 00호라고 자랑을 하고 있다.
대장간에는 쇠를 달구는 큰 풀무가 있고 크기가 다른 망치와 집게가 주욱 늘어서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수없이 두드려 만든 괭이와 호미, 삽과 쇠스랑 등이 진열되어 있다.
한때는 정말 좋았던 시대가 있었단다. 농사가 기계화되기 전에 손으로 농사를 짓던 시대에는 전주 주변 사람들과 김제 부안 사람들이 농기구를 사러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밤낮으로 농기구를 만드느라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대장간을 쿵쿵 울렸단다. 이곳에서 돈을 벌어 집도 사고 자식들도 대학까지 가르쳤단다.

이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오랜 세월을 대장간에서 풀무질을 하고 망치질을 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흘린 땀이 얼마이며 그 노고가 얼마나 컸겠는가? 여기에서 만들어진 농기구들이 얼마나 많은 논과 밭에서 곡식들을 가꾸어 냈겠는가? 그들의 공에 대하여 칭찬해 주어야 한다.
항간에 떠도는 이야기인 용두봉의 용을 잠을 못 자게 해서 신통력을 잃게 하려고 대장간을 이곳에 만들어 밤낮으로 쇳소리를 내게 했다는 이야기는 일본 사람들이 미우니까 지어낸 이야기일 거란다.
용머리 고개 절개지에 그려져 있는 긴 몸을 가진 용의 그림은 별 의미 없이 그려놓은 잘못 그려진 그림이란다. 용은 자기 몸을 온전하게 드러내지 않기 때문이다. 용은 구름으로 몸을 가린다. 그래서 맑은 날은 나타나지 않고 비가 올 때에 나타난다. 비가 올 때는 구름이 많기 때문에 몸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용두봉 바로 옆의 봉우리 이름이 백운봉인 것은 용두봉의 용을 감싸기 위한 봉우리 이름이다.
어쨌든 용머리 고개의 대장간은 옛날의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지닌 장소다. 완산칠봉 용두봉에서 화산으로 이어진 긴 용의 몸은 서신동 롯데 아파트까지 이른다. 화산은 본래 완산의 줄기다. 완산칠봉 중의 하나인 용두봉의 줄기다.
사람들이 힘드니까 길을 깊게 파서 다니기 편리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용의 목을 완전히 자르겠다는 일제강점기 때의 일본 사람들의 술수다. 그들은 우리나라의 산천 곳곳에 맥을 끊기 위하여 길을 내고 쇠기둥을 박아 깊은 상처를 주었다.
전주에서는 용머리 고개와 이목대와 오목대를 잘라 철길을 낸 곳이 대표적인 곳이다. 조선왕조의 발생지인 발산의 기운을 끊기 위해 철길을 내고 기차의 쇳소리와 기적 소리를 내게 했던 것이다.
용머리고개의 절개지는 옛 모습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래서 용의 기운이 통하게 해야 한다.
전주시에서는 그동안 용머리 고개에 놓여 있던 육교를 철거했다. 26년 동안 놓여 있던 육교가 철거되고 그곳을 연결하는 사업을 한다고 한다.
전주시에서는 풍수지리학상 전주를 감싸고 있는 네 개의 산줄기 중 하나인 용머리 고개를 복원하여 전주의 기를 살리겠다고 한다.
전주의 네 개의 산줄기는 승암산으로 불리는 치명자산과 기린봉, 거북바위와 용머리 고개다.
복원의 방법은 터널식이나 터널과 교각의 중간 형태로 만들어 용의 머리와 몸통을 연결한다고 한다. 그럼으로써 야생동물들의 통로도 열려 자연보호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한편 도시 재생 사업으로 용머리 고개에 있는 여의주 마을에 생태숲을 조성하고 쾌적한 도서관도 지을 계획이라 한다.
용머리 고개가 이어지고 완산칠봉의 용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면 전주의 영광도 거동을 시작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