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발산초등학교 뒤뜰 문화재

일본인 농장주가 모아놓은 우리 문화재

작성일 : 2022-09-16 22:13 수정일 : 2022-09-17 09:59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성! 혹시 군산 개정에 있는 발산초등학교에서 근무한 적은 없소?”

가끔 엉뚱하고 기발한 질문을 하여 나를 어리둥절하게 하는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님. 그런데 오늘은 참 쉬운 질문을 한다.

“아니. 없는데”

“아깝소. 성이 발산초등학교에 근무했으면 엄청난 글감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발산초등학교 뒤뜰에 많은 문화재가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국가 보물급 문화재란다. 귀가 번쩍 뜨인다. 학교 뒤뜰에 웬 국가 보물급 문화재?

 

천 선생을 재촉하여 군산을 향하여 달려가니 넓은 들판에 바람도 시원하고 풍경도 시원하다.

 

발산초등학교 뒤뜰.

이건 웬 야외 박물관인가?

학교 뒤뜰에 이렇게 많은 유물들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발산초등학교는 군산시 개정면에 위치한 학교다. 1947년 9월 1일에 개정공립국민학교 발산분교장으로 개교하여 이듬해 발산공립국민학교로 승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학교 터가 일제강점기 때에 일본인 대지주 사마타니 야소야의 집과 전답이 있던 터였고 지금 문화재가 있는 곳이 그의 정원이었다.

사마타니는 다른 농장주와는 달리 한국의 문화재에 관심이 많아 이곳저곳에서 문화재를 모아다가 자기 집 뜰에 진열을 해 놓았다. 그리고 콘크리트 창고를 지어 비교적 무게가 덜 나가는 유물들은 창고에 보관하였다.

해방이 되자 일본으로 들어갈 때에 창고 안의 유물들은 가져가고 돌로 된 유물들은 그대로 놓고 갔다. 어찌 보면 다행이기는 한데 언제 어디서 가져왔는지 출처를 알 수 없도록 만들어 버렸다.

그래도 교사의 이름을 둘러쓰고 공주 일대의 왕릉을 비롯한 1,000개가 넘는 무덤을 파헤쳐 유물을 모조리 일본으로 가져간 가루베보다는 나은 편이다. 가루베, 그놈은 정말 나쁜 놈이라고 조선총독부의 문화재 담당 일본인들도 욕을 했다.

 

발산초등학교 뒤뜰의 문화재는 ‘발산리 석탑군’으로 불리며 보물 제276호로 불리는 ‘발산리 오층석탑’과 보물 제234호로 지정되어 있는 ‘발산리 석등’ 이 있고 전라북도 문화재 제185호인 ‘발산리 육각부도’를 비롯하여 석상, 석인, 망주석, 문인석, 석양, 비석, 비대석, 귀부, 석조, 주초석, 맷돌, 사리탑인 석탑과 석등 등이 있다.

 

그중 중요한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발산리 석등

 

국가지정 문화재 보물 제 234호인 발산리 석등은 일제 강점기 때에 발산리로 옮겨왔는데 어디에서 가져온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석등은 불을 켜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이를 받혀주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들과 머리 장식을 얹었다. 받침의 가운데 기둥은 사각의 네 모서리를 둥글게 깎은 모양으로 표면에 구름 속을 요동치는 용의 모습을 새겼다. 이러한 형태는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모양이다.

화사석은 사각의 네 모서리를 깎아 8각을 이루게 하였으며 각 면에는 4개의 창과 불교의 법을 지키는 신인 사천왕상을 번갈아 두었다. 사천왕을 화사석에 새겨넣은 것은 등불을 보호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지붕은 8각으로 각 모서리 선이 뚜렷하며 곡선을 그리는 처마는 여덟 귀퉁이에서 치켜 올라가 있다. 상부에는 연꽃무늬가 조각된 머리장식 받침대를 만들어 놓았으나 머리장식은 남아 있지 않다.

석등의 양식이나 장식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유물로 보인다.

 

발산리 육각부도

 

이 육각부도도 언제 어디에서 이곳으로 옮겨다 놓았는지 알 수 없는 유물이다.

이 부도는 육각의 지대석 위에 2단의 하대석이 있고 하대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고 상단에는 복련과 함께 우주를 본떠 새겨 넣었으며 양련의 양대석 위에는 낮은 탑신받침이 있다. 육각의 탑신석은 두 군데에 문비를 새겼으며 옥개석 아래에는 3단의 옥개받침과 함께 연자와 부연을 새겼으며 상면은 기왓골을 선명하게 조각하였다. 오각부에 귀꽃 장식이 있었으나 모두 없어졌고 상륜부도 없어졌다.

우리나라 불교 조형물에서 육각이 등장하는 것이 고려시대에 들어서 중국의 송나라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연대를 추정할 수 있다.

이 부도는 전체적인 구도와 조각수법이 뛰어나고 육각이라는 형태가 매우 특이하다. 평면형의 특이함과 희소가치를 지닌 이 부도는 높은 조각 수법과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발산초등학교 뒤뜰에 있는 일본인 지주가 모아다 놓은 석조 문화재들

 

발산리 일본인 창고

 

이 창고는 일제강점기 때의 이곳 농장 주인 시마타니 야소야의 창고다. 그냥 농작물을 널어두는 창고가 아니라 귀중품을 넣어두었던 특별한 창고다.

철근콘크리트로 튼튼하게 지었으며 반지하와 지상 2층으로 지어져 있다. 입구에는 미국에서 들여온 철제 금고문이 달려 있고 창문에는 2중 잠금장치가 되어 있다.

이 창고에 비교적 크기가 작고 고가의 우리나라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쌓여 있었을 것이며 해방 후 일본으로 가져갔을 것이다.

이 튼튼한 창고는 한국전쟁 때 군산에 주둔한 공산군이 옥구지역 우익 인사들을 잡아다가 감금하는데 사용하기도 하였다.

 

발산리(鉢山里) 오층 석탑(五層石塔)

 

고려시대로 추정되는 높이 6.4m의 석탑이며 보물 제276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탑은 2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형성하고 정상에 상륜부(相輪部)를 장식한 석탑이다. 2층으로 되어 있는 기단부(基壇部)는 지대석 상면에 굄을 만들어 하층 기단을 받고 있는데, 하층기단 면석에는 각 면에 모서리기둥과 받침기둥을 한 개씩 마련하였다.

상단에는 각 면에 한 줄의 턱을 돌려놓았다. 갑석(甲石)은 4매석으로 짜여 졌고 상면에 굄대를 만들어 상층 기단을 받치고 있다. 상층 기단 면석에는 좌우에 모서리 기둥이 있고 받침기둥은 없다.

 

갑석은 넓은 판석으로 만들어졌고 하면에는 깊숙이 낮은 기단의 갑석 하부에 두른 쇠시리인 부연(副椽)이 하나 있으며, 상면에는 높고 낮은 굄을 마련하여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탑신은 본래 5층으로 보이는데 현재는 5층의 탑신과 옥개석은 남아 있지 않다. 탑신석과 옥개석은 각기 한 개로 조성하여 층층이 올려놓았는데 각 층 탑신석에는 좌우의 우주가 정연하게 조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하면에 3단씩의 받침이 있고 상면 중앙에 굄을 마련하여 그 위층의 탑신석을 받치고 있다. 낙수면이 평박(平薄)하고 추녀 밑에는 반전(反轉)이 있으며, 네 귀퉁이는 곡선을 보이고 있다.

상륜부는 현재 노반(露盤), 복발(覆鉢), 보륜(寶輪), 보개(寶蓋) 등이 차례로 얹혀 있으며, 각 보륜에는 철대(鐵帶)를 돌려 석재를 고정시켰는데 이것은 후대의 시설로 보인다.

이 석탑은 탑신부에서 각 층 옥개석이 넓고 네 귀퉁이의 전각에 반전도 넓어 경쾌한 기풍을 보인다. 하층 기단 면석에서 특이한 점을 보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탑신부의 경쾌함과 안정감 등으로 보아 백제 석탑의 특징이 나타나고 건립연대는 기단과 탑신부 등의 구성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로 추정된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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