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병, 아밀로이드보다 먼저 무너지는 것은 '뇌의 균형'일까

작성일 : 2026-08-28 15:59 수정일 : 2026-08-28 17:27 작성자 : 김윤옥 기자

알츠하이머병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단연 ‘아밀로이드 베타’다. 뇌에 이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쌓여 찌꺼기(플라크)를 형성하고, 이것이 신경세포를 손상시켜 기억력을 앗아간다는 설명은 오랫동안 알츠하이머병 연구의 절대적인 가설이었다.

 

실제로 아밀로이드는 알츠하이머병을 유발하는 핵심 병리다. 하지만 의학계에는 늘 한 가지 묵직한 의문이 맴돌았다. "아밀로이드만이 유일한 문제라면, 이를 제거했을 때 병의 진행도 완벽히 멈춰야 하지 않을까?"

 

최근 신경과학 연구들은 알츠하이머병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단순히 독성 단백질이 쌓이는 현상을 넘어, 그보다 앞서 뇌 신경회로의 ‘균형’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을 가능성에 주목한 것이다.

 

 

뇌에도 가속기와 브레이크가 있다

우리 뇌의 신경세포는 모두 같은 역할을 하지 않는다. 어떤 신경세포는 다른 신경세포의 활동을 촉진한다. 자동차에 비유하자면 ‘가속기’ 역할을 하는 흥분성 신경세포다. 반대로 지나친 흥분을 가라앉히는 ‘브레이크’ 역할의 억제성 신경세포도 존재한다.

 

건강한 뇌에서는 이 두 시스템이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하며 완벽한 균형을 유지한다. 필요할 때는 신경회로가 활성화되고, 과도해지면 억제회로가 즉각 제동을 건다. 우리가 기억하고, 판단하고, 학습하는 복잡한 뇌 기능은 사실 이 섬세한 ‘흥분과 억제의 균형(E/I Balance)’ 위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알츠하이머병 초기부터 이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증거가 잇따라 보고되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연구팀이 알츠하이머병 모델 생쥐를 분석한 결과, 흥분성 신경세포는 지나치게 활성화되는 반면, 일부 억제성 신경세포의 활성은 뚝 떨어지는 현상이 확인됐다. 동시에 뇌 속 환경을 관리하는 교세포(별아교세포 및 미세아교세포)가 신경세포 간의 연결(시냅스)을 무분별하게 제거하는 방식의 변화도 포착됐다.

 

쉽게 말해 가속기는 맹렬하게 밟히는데 브레이크는 고장 나버렸고, 뇌의 회로망을 관리하는 정비 시스템마저 붕괴된 것이다.

 

악순환의 고리를 연결하는 ‘스위치’의 발견

IBS 연구팀은 이 일련의 붕괴 과정에서 ‘ERBB4’라는 단백질에 주목했다. 본래 ERBB4는 정상적인 뇌의 억제성 신경세포에서 주로 발견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알츠하이머병 초기, 일부 ‘흥분성 신경세포’에서 이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급증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변화가 단순한 질병의 흔적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연구팀이 알츠하이머병 모델 생쥐의 흥분성 신경세포에서 ERBB4 수치를 선택적으로 낮추자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과도했던 신경회로의 흥분이 가라앉았고, 비정상적인 시냅스 제거와 교세포의 과잉 반응도 완화됐다. 무엇보다 아밀로이드 플라크의 면적과 수량이 50% 이상 줄어들었으며, 저하됐던 기억력과 공간 인지 능력까지 개선됐다.

 

역으로 정상 생쥐의 흥분성 신경세포에서 ERBB4를 인위적으로 증가시켰을 때는, 아직 뇌에 아밀로이드 플라크가 쌓이지 않은 상태임에도 신경회로 과흥분과 시냅스 불균형 등 알츠하이머병과 유사한 초기 병리가 유발됐다.

 

 

아밀로이드는 ‘원인’인 동시에 ‘악순환의 결과’일 수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알츠하이머병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야를 획기적으로 넓혀준다. 지금까지 치매를 ‘아밀로이드 축적 → 신경세포 손상 → 인지기능 저하’라는 일방통행의 과정으로 이해해 왔다면, 이제는 복잡하게 얽힌 다차원적 병리로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알츠하이머병의 새로운 악순환 모델] 신경회로 균형 붕괴 → 신경세포 과흥분 → 시냅스 이상 → 교세포 과반응 → 아밀로이드 축적 → 다시 신경회로 손상

즉, 여러 병리가 서로를 자극하며 증폭시키는 치명적인 악순환일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연구팀은 ERBB4 단일 단백질이 알츠하이머병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단언하지 않는다. 다만, 이 복합적인 병리가 악화하는 과정에서 ERBB4가 중요한 ‘공통 조절점(스위치)’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치매를 ‘뇌 회로의 질환’으로 다시 정의한다면

이 새로운 관점이 기존의 아밀로이드 연구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아밀로이드와 타우 단백질은 여전히 알츠하이머병을 설명하는 핵심 축이다. 다만,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의 차원이 한 단계 깊어졌음을 의미한다.

 

“아밀로이드를 어떻게 제거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넘어, “아밀로이드가 쌓이기 전후로 왜 뇌의 흥분과 억제 균형이 무너지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균형을 다시 회복시킬 것인가?”를 함께 고민해야 할 때다.

 

물론 이번 연구 하나로 당장 인간의 치매를 완치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아직은 동물실험과 인체 뇌 조직 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치료 표적의 ‘가능성’을 열어젖힌 단계이며, 임상적 안전성과 효과는 앞으로 치열하게 검증해 나가야 할 과제다.

 

그럼에도 이 연구가 던지는 화두는 묵직하다.

“알츠하이머병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은 기억일까, 단백질일까, 아니면 뇌가 평생에 걸쳐 유지해 온 ‘흥분과 억제의 아슬아슬한 균형’일까?”

 

알츠하이머병을 단순한 찌꺼기 축적 질환을 넘어, 뇌 회로의 항상성이 서서히 무너지는 시스템 질환으로 바라보기 시작할 때, 인류는 치매 조기 진단과 치료의 완전히 새로운 출발선에 서게 될 것이다.

 

 

| 자료 : 과학기술정보통신부·기초과학연구원(IBS), Nature 게재 연구 관련 보도자료, 2026.8.27.

Lee SY, et al. Aberrant excitatory neuronal ERBB4 promotes Alzheimer’s disease pathology. Nature. 2026.

 

 

김윤옥 기자 viator291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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