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연구실에서 7년간 35만자의 세필글씨와 야생화 그림 그려 만든 500여점 작품 산수전(傘壽展)에서 선보여

( 아석 소병순 서예가 전시회 포스터=소병순 서예가 제공)
호남의 대표적 원로 서예가인 아석 소병순 선생이 자신의 80세를 기념하는 산수전(傘壽展)으로 『글씨와 야생화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전북예술회관 1층 기스락 실에서 아주 특별한 전시회를 열고 있어 다녀왔습니다.
소병순 서예가는 노년에도 끊임없는 연구노력으로 서예에 정진하여 후배 서예가들에게 큰 가르침과 울림을 주는 전시회를 열고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존경심이 들었습니다.
누구나 노년에는 조금 편안히 쉬어야 된다는 생각을 하기 쉬운데 7년간 35만자에 달하는 서예 작품을 쓰고, 대한민국 전역에 산재한 320여 종의 야생화를 찾아다니며 스케치하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정말 초인적인 인내심을 가지지 아니고서는 감히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전시 대표 작품으로 마태복음과 요한복음 등 성경 10만 자, 다산 정양용 선생 목민심서 12폭 병풍 13,500자. 채근담 12,500자, 용비어천가 10폭 병풍. 노자 도덕경 12폭 병풍, 전서 천자문 12폭 병풍. 소동파 선생 적벽부 8폭 병풍, 명심보감 12폭 병풍, 부모은중경 8폭 병풍, 율곡 선생 시, 효경 16폭 병풍, 권농교서, 야생화 320종의 그림과 글씨를 써서 만든 병풍 등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작품을 통해 평생을 서예에 정진한 노 서예가의 예술 혼을 알게 하는 대단한 역작이며, 작품제작에는 온 정신을 집중하여 정말 초인적인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완성해야 하는 예술적 난이도가 높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품을 보면서 서예에 정진하는 노 서예가의 정신이 현대를 살아가며 귀찮은 것을 조금도 참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전시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병순 서예가는 전서, 예서, 해서, 행서, 초서에 이르기까지 오체를 두루 섭렵하여 자유자재로 필체를 구사하는 대한민국에 몇 안 되는 서예의 대가입니다. 그런 노 서예가가 대한민국에 산재하는 야생화를 모두 담아내는 작업을 통해 야생화와의 사랑에 빠져서 지난 7년간을 단 한 시간도 허투루 쓰지 않고 오롯이 이번 전시회를 위한 작품제작에 매달려 살았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노 서예가는 기자와 만나서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누구나 하는 보통의 일로는 절대 감동이 되지 않으며, 초인적인 정열과 의지를 갖추고 모든 것을 잊고 매달리지 않으면 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이 지난 7년간 오직 한 길 서예에 온 정열을 쏟고 대한민국에 전역에 산재한 야생화를 기록에 남겨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이러한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익산에서 1941년에 태어난 소병순 서예가는 모암 소진우 재종조부에게서 한문을 수학한 후, 원광대 서예 학과를 창설한 남정 최정균 서예가를 스승으로 모시고 배웠다고 합니다.
각종 대회 참가경력으로는 대한민국서예대전(국전)에 입선과 특선 7회를 한 후, 1983년부터 초대작가, 심사위원,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전북도전 초대작가와 심사위원, 부산시전, 인천시전, 전남도전, 경기도전 등 굵직한 전시회에서 초대받아 심사위원을 지낸 바 있다. 한국미술협회 전북지회 부회장, 창암이삼만선양회 회장, 세계서예 비엔날레 조직위원 겸 감사 등을 역임한 바 있고, 대한민국 서예발전을 위한 후진 양성에 일생을 바쳐 왔다.
전시회는 1984년 고향 익산에서 개최한 이후로 전주, 서울 등지에서 여러 차례 개최하였으며, 1988년 한 중 일 중견작가 교류전, 2011년 희수전을 열어 서예가의 예술 혼을 널리 알린 바 있다.
수상 경력으로는 1990년 익산시 문화장을 수상하였으며, 1980년대부터 2000년에 이르기까지 30여 연간 전주교도소를 찾아 서예 지도를 통해 수용자들의 심성 변화에도 크게 이바지하여 지금까지 선생의 고결한 인품에 반하여 찾아오는 출소자들이 여럿 있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