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달로 전북예술회관 기스락 1실에 전시
전시회 명칭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The 2nd
現‧全
EXHIBITION
현‧전그룹 회원들의 작품 전시회인데 무언가 다른 분위기가 감돈다.
그룹 이름 중 現은 알겠는데 全은 무엇일까? 온전 전자가 분명한데 전주나 전라북도를 의미하기도 한 글자이기 때문이다.
현재 전라북도에서 미술활동을 하고 있는 원로 화가들의 전시회라 해석할 수도 있고 그동안 온전히 그림 하나에 매달려온 모든 마음을 망라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카탈로그 모시는 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 지역에서 50~60년 넘게 미술 속에서 살고 미술과 함께 울고 웃는 세월을 견뎌내 온, 이제 하얗게 서리 내린 작가들이 서로에게 힘이 되고 격려하고 나아가 전북 화단의 발전과 선후배들에게 견인차 역할을 해보자고 모였습니다. 지역 미술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고 선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그룹으로 발전되기를 모두는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의 해석이 크게 빗나가지는 않은 듯하다.
조심스럽게 전시장으로 들어가 본다. 안내하시는 분이 여기에 전시된 작품의 작가들은 젊었을 때에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면서 그림을 그려온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 열한 명의 작품들이라고 말해준다.
작품 하나하나 앞에 설 때마다 숙연함이 깃든다.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간다는 말은 이렇게 예술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말인 듯하다.
낯익은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붉은 소나무, 적송을 소재로 많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화가, 양만호 화백이 틀림없다. 그도 이제 흰머리 쓴 화가 대열에 들어섰구나 생각하니 세월의 빠름은 여기에서도 존재하고 있다.
그의 또 다른 작품 「석류와 참새」 앞에 선다. 붉게 익어 입을 벌린 석류가 세 개, 그리고 석류 주변에 앉아 있는 참새가 일곱 마리.
저곳이 어디일까? 그의 고향 순창군 동계면 관전마을 어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저 석류나무 아래에서 참새 일곱 마리처럼 재잘대던 깨복쟁이 동무들이 있었을 것이다.

작품을 만드는 사람은 작가이지만 일단 작품을 내어 놓으면 해석은 감상자의 몫이다. 석류와 참새에는 무언가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 숨겨진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한 편의 동화로 엮어볼까?
작품 앞에 서면 숙연해진다. 저 작품 한 편 속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을까? 어쩌면 그의 인생이 다 녹아 있을 것이다.
시인 정현종의 「방문객」이라는 시의 이런 구절이 생각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작가들의 프로필을 보니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외국에 나가 국제전을 열었던 화가들이 많다. 개인전, 단체전, 국제전 합하여 500번이 훨씬 넘는 작가들도 있다.
말이 500번이지 작품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까? 그 아이디어 짜내느라 얼마나 고심을 했을까? 작업시간은 또 얼마나 많이 걸렸을까? 그러다보니 화폭에서 세월이 흘러가고 머리가 하얘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작품 앞에 서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림은 사진과는 다르다. 사진에서처럼 섬세한 부분을 볼 수는 없어도 그보다 훨씬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사진에는 없는 따뜻함과 포근함이 있다.
작품을 둘러보고 나니 現‧全이라는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가는듯하다. 특히 全이라는 글자가 이해가 간다. 그래, 작품 한 편에 온전히 몰입했던 거야. 작품 한 편이 자기 전부였던 거야. 세상을 살아가려면 그렇게 살아야 돼. 화가가 작품 한 편을 만들어내듯이 그렇게 온전히 몰입해야 돼.
우연히 들른 現‧全 미술 전시회에서 또 한 번 삶의 방법을 찾을 수 있었던 참 좋은 날 중의 하루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