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한 진료는 더 두껍게, 과도한 진료는 더 엄격하게

작성일 : 2026-09-10 11:38 수정일 : 2026-09-11 08:22 작성자 : 김윤옥 기자

건강보험 정책이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한편에서는 중증·희귀난치질환자와 중증당뇨병 환자의 부담을 낮추고, 다른 한편에서는 과도한 외래진료를 관리한다. 겉으로 보면 ‘보장 확대’와 ‘이용 억제’라는 서로 반대되는 정책처럼 보이지만, 두 정책을 함께 보면 정부가 건강보험을 바라보는 기준이 달라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보장하느냐가 아니라, 누구에게 얼마나 두껍게 보장할 것인가이다.

 

 

 질환명 대신 '중증도', 더 두터워진 보장

보건복지부의 ‘건강보험 보장 1단계 혁신방안’에 따르면 중증·희귀난치질환자 등을 포함해 약 197만 명에게 연간 6천억~8천억 원 규모의 지원이 이뤄진다. 희귀·중증난치질환자의 산정특례 본인부담률은 현행 10%에서 2026년 12월 7%, 2028년 상반기에는 5%까지 단계적으로 낮아진다. 5년마다 불필요한 검사를 반복해야 했던 재등록 절차도 임상진단과 치료이력 중심으로 간소화된다. 중증당뇨병 역시 기존 1형 당뇨병 중심 지원에서 벗어나, 췌장기능이 크게 저하된 중증 2형 당뇨병까지 지원 대상이 대폭 확대된다.

 

이 변화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히 지원 대상이 늘어난다는 사실만은 아니다. 건강보험의 판단 기준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중증당뇨병의 경우 기존에는 ‘1형인가, 2형인가’라는 질환 유형이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췌장장애와 췌도부전 등 실제 환자의 중증도가 지원의 핵심 기준이 된다. 질병명보다 환자의 실제 의료 필요도를 더 세밀하게 보겠다는 의미다.

 

 과다 외래진료 억제… 반복·중복 진료 막는다

반대편에서는 과도한 의료이용에 대한 관리가 엄격해진다. 2027년부터 연간 외래진료가 300회를 초과하면 301회째부터 본인부담률 90%를 적용한다. 다만 아동·임산부·중증·희귀난치질환자 등 의학적으로 잦은 진료가 필요한 환자는 예외로 보호된다.

 

우리나라 국민의 연간 외래진료 횟수는 2024년 기준 1인당 17.9회로 OECD 평균 6.6회의 약 2.7배에 달한다. 여러 의료기관을 이용하면서 동일하거나 유사한 검사와 치료가 반복되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정부는 2026년 12월 24일부터 '요양급여내역 확인시스템'을 구축해 진료 현장에서 CT와 MRI 등의 이용 내역을 즉시 확인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선택과 집중',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의 핵심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둘러싼 고민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고령화로 만성질환 관리 수요는 늘고, 혁신신약과 새로운 의료기술은 빠르게 등장한다. 2027년 건강보험료율이 7.19%로 동결된 상황에서 한정된 재정을 지키려면 의료남용과 과다 이용에 대한 합리적 관리는 필수적이다.

 

따라서 이번 정책은 ‘건강보험을 더 쓸 것인가, 덜 쓸 것인가’의 단순한 수치 싸움이 아니다. 재정의 우선순위를 재설계해 꼭 필요한 곳에 더 집중하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좋은 건강보험은 모두에게 똑같이 나누어주는 보험이 아니다. 질병의 위험과 치료 필요성이 클수록 더 두껍게 보호하고, 불필요한 의료이용은 줄여 다음 환자를 치료할 여력을 남기는 보험이어야 한다. 필요한 진료에는 더 두껍게, 과도한 진료에는 더 엄격하게.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은 결국 이 선택과 집중에서 시작된다.

 

 

 

김윤옥 기자 viator2912@naver.com
"정확하고 빠른 전라북도 소식으로 지역공동체의 건강한 내일을 위한 건강한 정보를 전달드리겠습니다."
저작권ⓒ '건강한 인터넷 신문' 헬스케어뉴스(http://www.hcnews.or.kr)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건강보험 #보장성강화 #중증질환 #희귀난치질환 #과다의료이용 #외래진료 #본인부담 #의료자원 #선택과집중 #건강보험지속가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