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환 신부가 직접 만든 임실 성가리 치즈 토굴
이젠 누가 뭐래도 치즈하면 임실이다.
임실이 치즈의 원조요, 치즈의 고장으로 우뚝 선 것이다.
이것은 오로지 지정환 신부의 피와 땀과 눈물로 이루어낸 결실이다.
“혹시 지정환 신부님이 치즈를 만들어 숙성시키고 보관했던 토굴을 아시나요?”
이건 무슨 소리인가? 임실 사람인 내가 전혀 모르고 있었던 말이다.
치즈 토굴에 대하여 운을 띄운 사람은 양수정 선생님이다.
지정환 산부가 처음 치즈를 만들고 치즈를 숙성시키며 보관했던 토굴이 있다는 것이었다. 귀가 번쩍 트이는 말이다.
양수정 선생님을 앞세워 치즈 토굴을 찾아갔다.
임실의 본토라고 할 수 있는 성가리 마을. 이곳이 임실의 본 바닥이다. 초등학교도 이곳에 서 있고 임실의 부자들도 이곳에서 살았다. 어렸을 때에 임실에 만석꾼 부자가 있는데 성가리에 살고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저 건물이 지정환 신부님이 살던 집입니다. 그 앞마당이 치즈공장이 있던 곳이고 저 집 밑에 토굴이 있습니다.”

지정환 신부가 거처했던 집. 지하에 토굴이 있다.
양수정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토굴로 들어섰다. 바위를 뚫어 만든 토굴이다. 입구는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인데 안은 시멘트로 덧칠을 해 놓았다. 토굴은 옆에 또 다른 방들을 만들어 여러 곳에 치즈를 숙성시키고 보관하도록 했다.

지정환 신부가 직접 만든 치즈를 숙성시키고 보관했던 토굴
“이 작은 터전이 임실치즈를 태동시키고 발전시킨 역사적인 장소인데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안타까울 뿐입니다.”
안타까워하는 양수정 선생님은 이곳을 치즈 골목으로 만들어 널리 알리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지정환 신부와 임실 치즈에 대하여 공부하고 즐기는 학습의 장과 관광의 장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임실치즈 발생지인 토굴로 가는 길목 담벼락에는 지정환 신부와 치즈의 역사가 간략하게 그림을 곁들여 안내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눈에 띄는 그림은 지정환 신부가 처음 치즈 사업을 시작했을 때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 저 사람들의 노고로 오늘날의 임실치즈가 탄생한 것이다.
골목 담벼락에 그려진 치즈 역사는 이러하다.
1964년 임실과 지정환 신부의 만남.
부안에서 전주를 거쳐 임실로 가는 길은 정말 힘들었다.
“신부님, 이곳 임실은 참으로 가난한 곳입니다.”
1965년, “여러분, 우리 산양을 키워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1966년, “여러분, 우리 산양 협동조합을 만듭시다.”
서로 도와가며 일해보자는 생각에 산양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1966년, 치즈공장 만들기
성당에서 500m쯤 떨어진 성가리의 한 집을 찾아내었다.
1967년, 한국 최초의 치즈공장 설립
병원에 돌아다니며 모은 링거병을 굴 벽면에 쌓고 거울로 햇빛을 비췄더니 굴 전체가 환해졌다.
1968년 치즈 생산에 성공, 그러나 숙련된 기술이 없었다.
1969년, 한국산 제1호 치즈 제조 성공

지정환 신부가 만든 토굴에서 숙성 보관되고 있는 치즈
1972년. 산양에서 젖소로
“산양유는 양도 적고 계절마다품질이 달라 한계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젖소로 바꿔야 할 때가 온 것입니다.”
치즈 토굴로 가는 골목의 허술한 담벼락들이 임실의 자랑거리인 임실치즈의 역사를 안고 있다.
“이곳 성가리가 ‘전북형 도시재생 뉴딜사업’에 선정이 되어 2023년까지 사업이 진행될 것입니다. 이곳에는 여섯 개의 골목이 있는데 먼저 ‘치즈 골목’을 만들고 백로가 사는 ‘백로 골목’을 만든 다음 전국적으로 활동이 왕성한 임실문학을 드러내는 ‘문학 골목’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나머지도 생각을 해보아야겠지요.”
다부진 양수정 선생의 주장이다. 현재 여러 가지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이곳이 다시 활력을 찾고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새로운 명소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그의 의지가 힘이 넘친다.
지정환 신부가 임실과 인연을 맺은 것은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 영화관에서 뉴스에 나오는 한국전쟁의 참상을 보고 한국행을 결심했으며 1960년 전동성당 보좌신부로 부임하여 부안성당 주임신부를 거쳐 1964년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하면서부터였다.
산과 들에 양들이 먹을 풀들이 가득한 것을 보고 산양을 기르면 주민들에게 도움이 되겠다 싶어 산양을 기르게 되었고 산양의 우유가 남게 되자 치즈를 만들 생각을 하게 되었다.
1966년 5월에 한국 최초의 치즈공장이 만들어지고 수많은 실패 끝에 1969년 드디어 한국 제1호 치즈가 만들어졌다. 이 치즈가 서울의 조선호텔에 납품을 하게 되면서 성공을 한 것이다.
임실 치즈가 성공을 하자 그는 공장의 소유권과 운영권을 주민 협동조합에 넘겼다. 현재 임실치즈 브랜드만 70여 개에 달한다.
지정환 신부는 말년에 완주군 소양에서 장애인 재활 쉼터를 운영하다가 2019년 세상을 떠났다.
그가 마지막 여생을 임실에서 지내게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다.
그는 갔지만 임실에 치즈의 고장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안겨 주었고 임실치즈테마파크가 전국적인 관광지가 되게 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임실읍 성가리의 치즈 토굴에서 시작되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