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골은 백제로가 시작되는 전주역에서 시내 중심부를 향하여 서쪽으로 1km 정도 오면 ‘명주골 사거리’를 만나는데 거기에서 바라보면 남서쪽에 도당산 줄기를 타고 서쪽으로 벋어나간 능선이 보인다. 이 산줄기 곳곳에 펼쳐졌던 마을을 명주골이라 부른다.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 뒷산이기도 한 이 산줄기는 조선시대에는 목포에서 서울로 가는 제1호 국도였다. 지금의 동중학교 앞부분인 심방죽을 지나 올라오는 고개가 아리랑 고개인데 이곳을 거쳐 봉동과 고산을 거쳐 운주와 금산으로 벋어 서울까지 이어진 길이었다.
이 산줄기를 따라 금암동 분수대까지 이어지는 골짜기에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쳐서 명주실을 자아 내렸다. 그래서 명주골이 되었는데 지금은 명주에 관련된 흔적은 찾을 수가 없고 다만 ‘명주길’이라는 도로명이 남아 있고 대자인 병원과 홈플러스, 그리고 한국 장애인고용공단 전북지사를 끼고 있는 사거리를 ‘명주골 사거리’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한 때는 이곳 명주골에서 전북대학교까지 이어지는 넓은 산야가 뽕밭이었고 곳곳에 집들이 들어서고 동네를 이루었는데 뽕을 따다가 누에를 길러 최고급 비단인 명주를 생산해 내었던 곳이다.
그런가 하면 전주의 명물인 부채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중학생 시절 내 고향 윗집에 살았던 선들 댁이 친정에 간다고 함께 전주에 올라왔는데 그가 도착한 곳이 바로 명주골이었다. 그때에 부채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명주길’을 따라 구불구불 좁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산마루까지 집들이 들어서 있는데 곳곳에 팻말이 세워져 있다.
“이곳은 개인 소유이오니 주인의 허락 없이 함부로 경작을 금합니다.”
전주시의 소유인 인후공원 도당산 줄기니까 국가의 소유일 것 같은데 생명과학고등학교가 있는 남쪽 언덕바지는 국유림이 대부분이고 산마루 북쪽은 대부분이 개인 소유인 것이다.

전에는 온통 뽕밭이었던 명주골 언덕
그야말로 삿갓배미라 할 수 있는 손바닥만 한 밭들이 구불구불 경계를 이루고 있다. 취미 삼아 이곳에서 밭농사를 짓고 있다는 친구 강 선생은 이곳에 와서 밭일을 하면서 몸을 놀리면 신체활동이 되어 운동도 되고 노동의 기쁨도 누리며 작물들이 자라 가는 모습 속에서 자연의 신비도 느껴본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국전쟁 이후에 피란민들이 이 부근에서 모여서 살았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가장 꼭대기에는 기도원이 있다. 사방이 다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훨씬 하나님과 가까워지리라는 기대감이 있을 것 같다.

명주골 산마루에 있는 교회 건물
명주는 누에고치에서 나오는 실을 말하며 옛날이나 지금이나 최고의 비단이다. 더욱이나 옛날에는 유일한 비단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 명주가 전주에서는 명주골에서 생산되어 퍼져나갔던 것인데 지금은 뽕나무 한 그루 볼 수 없다.
다행히 이곳은 산을 깎아내려 대단위 아파트를 짓는 일은 하지 않아 산줄기는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도당산 맥은 끊어진 지 오래다. 지금의 위브어울림 아파트 전신인 인후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산줄기가 없어졌고 아리랑 고개도 없어졌다. 현재 북일초등학교 자리는 황산이라는 뾰족한 산이 있었다. 그 산을 헐어서 지은 학교가 북일초등학교인 것이다.
그래서 산줄기 끝에 있는 금암동의 거북바위가 힘을 못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명주골 사거리’와 ‘명주길’이라는 이름만 남은 채 명주골 동네는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산동네로 남아 있다.
명주골을 지금 찾아가 보니
최고의 비단 명주를 만들어내던 산동네
명주골은 백제로가 시작되는 전주역에서 시내 중심부를 향하여 서쪽으로 1km 정도 오면 ‘명주골 사거리’를 만나는데 거기에서 바라보면 남서쪽에 도당산 줄기를 타고 서쪽으로 벋어나간 능선이 보인다. 이 산줄기 곳곳에 펼쳐졌던 마을을 명주골이라 부른다.
전주생명고등학교 뒷산이기도 한 이 산줄기는 조선시대에는 목포에서 서울로 가는 제1호 국도였다. 지금의 동중학교 앞부분인 심방죽을 지나 올라오는 고개가 아리랑 고개인데 이곳을 거쳐 봉동과 고산을 거쳐 운주와 금산으로 벋어 서울까지 이어진 길이었다.
이 산줄기를 따라 금암동 분수대까지 이어지는 골짜기에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쳐서 명주실을 자아 내렸다. 그래서 명주골이 되었는데 지금은 명주에 관련된 흔적은 찾을 수가 없고 다만 ‘명주길’이라는 도로명이 남아 있고 대자인 병원과 홈플러스, 그리고 한국 장애인고용공단 전북지사를 끼고 있는 사거리를 ‘명주골 사거리’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전부였다.
한 때는 이곳 명주골에서 전북대학교까지 이어지는 넓은 산야가 뽕밭이었고 곳곳에 집들이 들어서고 동네를 이루었는데 뽕을 따다가 누에를 길러 최고급 비단인 명주를 생산해 내었던 곳이다.
그런가 하면 전주의 명물인 부채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중학생 시절 내 고향 윗집에 살았던 선들 댁이 친정에 간다고 함께 전주에 올라왔는데 그가 도착한 곳이 바로 명주골이었다. 그때에 부채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명주길’을 따라 구불구불 좁은 산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산마루까지 집들이 들어서 있는데 곳곳에 팻말이 세워져 있다.
“이곳은 개인 소유이오니 주인의 허락 없이 함부로 경작을 금합니다.”
전주시의 소유인 인후공원 도당산 줄기니까 국가의 소유일 것 같은데 생명과학고등학교가 있는 남쪽 언덕바지는 국유림이 대부분이고 산마루 북쪽은 대부분이 개인 소유인 것이다.
그야말로 삿갓배미라 할 수 있는 손바닥만 한 밭들이 구불구불 경계를 이루고 있다. 취미 삼아 이곳에서 밭농사를 짓고 있다는 친구 강 선생은 이곳에 와서 밭일을 하면서 몸을 놀리면 신체활동이 되어 운동도 되고 노동의 기쁨도 누리며 작물들이 자라 가는 모습 속에서 자연의 신비도 느껴본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국전쟁 이후에 피란민들이 이 부근에서 모여서 살았다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가장 꼭대기에는 기도원이 있다. 사방이 다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훨씬 하나님과 가까워지리라는 기대감이 있을 것 같다.
명주는 누에고치에서 나오는 실을 말하며 옛날이나 지금이나 최고의 비단이다. 더욱이나 옛날에는 유일한 비단이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 명주가 전주에서는 명주골에서 생산되어 퍼져나갔던 것인데 지금은 뽕나무 한 그루 볼 수 없다.
다행히 이곳은 산을 깎아내려 대단위 아파트를 짓는 일은 하지 않아 산줄기는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러나 도당산 맥은 끊어진 지 오래다. 지금의 위브어울림 아파트 전신인 인후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산줄기가 없어졌고 아리랑 고개도 없어졌다. 북일초등학교 자리는 황산이라는 뾰족한 산이 있었다. 그 산을 헐어서 지은 학교가 북일초등학교인 것이다.
그래서 산줄기 끝에 있는 금암동의 거북바위가 힘을 못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명주골 사거리’와 ‘명주길’이라는 이름만 남은 채 명주골 동네는 여전히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산동네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