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원한을 풀어주시오

개로 불러지던 원한 서린 김제 원평 집강소

작성일 : 2022-10-25 06:40 수정일 : 2022-10-25 08:47 작성자 : 이용만 기자

 

 

 

“나는 사람이로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고 개로 불러지고 있습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집과 땅을 내놓을 테니 이곳을 본부로 사용하여 주시고 내 원한을 풀어주시오.”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름이 있었지만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고 개라고 불러지던 사람이 있었다. 그가 바로 “동록개”였다.

원한에 서려 있던 그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자기 집과 땅을 내어 놓는다. 자기 소유를 사무실로 쓰라는 것이었다. 그곳이 집강소로서는 전국 최초로 복원이 된 원평 집강소다.

 

허리가 아파 이곳저곳으로 치료를 다니느라 틈을 못 내던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님’이 소식을 전해왔다.

“성, 혹시 동록개란 이름 들어보았소?”

“웬 개 이야기여?”

사람 개가 있었다면서 그 집을 보러가자는 것이었다. 그가 안내한 곳은 김제시 금산면 봉황로 5번지에 있는 ‘원평 집강소’였다. 지천에 두고 빙빙 돌아 다시 도착한 곳은 원평 하나로마트 바로 뒤였다.

 

흔히 이름난 사람들의 생가처럼 여느 초가집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초가 한 채가 서있다. 입구에는 “동학농민혁명 원평 집강소”라는 안내석이 서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서면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두 개의 장승이다. 다른 곳의 장승은 몸에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의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여기 서 있는 장승에는 ’동록개의 꿈‘과 ’평등한 세상‘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사람으로 태어나 개라 불리었던 동록개의 꿈이 서린 원평 집강소 마당의 장승

 

마루에는 당시의 사무실 모습이 재현되어 있고 ‘동학농민혁명의 꽃 집강소’에 대한 사진과 ‘동학농민혁명 구미란 전적지 무명 농민군 무덤’에 대한 사진과 안내문이 걸려 있다,

 

원평 집강소는 동학농민혁명 당시 동학 농민군이 집강소를 설치했던 곳이다. 1894년 고부에서 일어난 동학농민군은 파죽지세로 전주를 점령하게 되고 급기야 동학농민군 전봉준 장군과 전라감사 김학진은 ‘전주화약’을 맺고 관민상화의 원칙에 따라 전라도 53개 군현에 집강소를 설치하기로 합의하게 되었다.

 

집강소는 전라도 일대에 설치되어 농민 통치를 실시했던 지방 자치기관으로 그 지역의 행정을 담당하던 본부였다. 동학농민군은 이곳을 중심으로 행정권을 장악하고 잘못된 정치제도를 바로 잡고 신분의 차별을 없애는 등 평등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농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마련하였다.

오늘날의 헌법에 나오는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항의 근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집강소를 통한 농민의 정치 참여는 한국 근대사에 민주주의 새 장을 여는데 크게 기여 하였으며 집강소 설치는 동학농민혁명의 가장 큰 성과라고 볼 수 있다.

 

이곳 원평 집강소는 백정 출신 동록개가 대접주 김덕명 장군에게 ‘신분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하며 헌납한 곳이다. 그의 뜻을 받아들여 이곳에 집강소를 설치하고 만민이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인간 평등을 원했던 동록개가 기부한 땅에 세워진 원평 집강소

 

원평 집강소는 1882년에 4칸의 초가로 지어졌으며 집강소로 사용한 이후에는 금산면사무소로 사용되었고, 원불교의 불법연구회 교당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그 후는 개인 소유로 사용되고 있었다.

2014년 문화재청은 원평 집강소의 가치를 인정하여 토지와 집을 매입하고 이듬해에 원평 집강소 당시의 모습으로 복원을 하였다. 집강소를 복원한 것은 이곳이 처음이라 한다.

 

똑같은 사람으로 태어나 똑같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데 사람으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고 개 취급을 받으며 ‘동록개’라 부리던 사람의 원한이 서린 원평 집강소.

 

자기의 소유를 다 내어 놓은 그는 누구보다 용감한 동학농민군의 일원이었을 것이다. 그가 어디에서 어떻게 활동을 했으며 어느 전투에서 어떻게 싸우다 죽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는 이름도 불려지지 않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는 누구보다도 용감한 동학농민군이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원평 집강소 마당에는 곱게 핀 꽃들이 집강소를 둘러싸고 있다. ‘동록개의 꿈’이 저 꽃으로 피어난 것이리라. 이제 그가 바라던 평등사회가 되었으니 원한을 접고 저 꽃처럼 환한 미소로 맑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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