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놈, 네 죄를 네가 알렸다!”
동헌에는 추상같은 서기가 서린다.
온 관청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수령의 목소리가 하늘을 가른다.
수령의 목소리 하나에 동헌 아래 꿇어앉은 사람은 정신이 반절은 나가 있는 상태다.
이런 곳이 동헌(東軒)이다.
동헌은 조선시대 지방 관서에서 관찰사, 병사, 수사, 수령들이 정무를 보던 관청의 중심 건물로 이곳에서 일반 행정과 재판 등이 행하여졌다.
동헌은 지방관의 생활 처소인 내아와 구분되어 그 동편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동헌(東軒)이라 불리게 되었고 이에 준하여 내아는 서헌(西軒)이라 불리게 되었다.
당시에 전주부윤은 전라관찰사와 똑같은 종 2품이었다. 그래서 전라관찰사가 전주 부윤을 겸했다. 현재로 말하면 전북도지사가 전주시장을 겸한 것이다. 그러므로 전주 동헌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는 제주도까지 울려 퍼졌다고 볼 수 있다. 당시의 전라관찰사는 제주도까지 관할을 했다.
"전주동헌에 임실 성가리 고택이 와 있는 것 아시나요?"
이크, 큰일났다. 그래도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할 수밖에.
내가 모르는 것만 질문하듯이 해도 밉지 않은 그는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
전주동헌은 한옥마을 오목대 아래 놓여 있다. 어찌 보면 초라해진 몰골로 서 있다. 전주 동헌은 그만큼 시련을 겪은 건물이다.
전주 동헌인 풍락헌(豊樂軒)은 조선시대 전주 부윤의 업무 공간으로 조선 초기에 건립되었다. 그 후 고종 28년인 1891년에 중건되었으나 일제가 조선 말살 정책을 펴면서 민간인에게 매각을 해버렸다.
당시 전주동헌을 매입한 전주 유 씨는 이를 완주군 구이면 덕천리로 옮겨 제각으로 사용하였다.
전주 동헌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생각할 때 문중 제각보다는 전주 유물로 남겨야 한다는 전주시의 설득에 소유주인 유인수 씨가 전주시에 쾌척함으로써 2009년 한옥마을로 옮겨오게 되었다. 전주를 떠난 지 75년 만에 귀환을 한 것이다.
전주 동헌 풍락헌(豊樂軒)은 조선 왕조의 발생지인 풍패지향(豐沛之鄕)인 전주를 안락하게 하는 집이라는 뜻을 새겨 풍락헌(豊樂軒)이라 하였다.
전주 동헌의 또 다른 이름인 음순당(飮醇堂)은 임금의 덕이 마치 가장 순수한 술을 마신 후 모르는 사이에 깨어난 것처럼 임금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자는 뜻으로 불러진 이름이다. 요순시대의 임금의 은덕에 비유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전주 동헌에 놓여 있는 김제 금구의 장현식 고택의 안채
전주 동헌을 전주로 다시 끌어들인 전주시는 내친김에 김제 금구의 만석꾼이었으며 독립운동가였던 장현식 선생의 안채와 중간채를 매입하여 전주동헌 옆에 세웠다.
그리고 임실읍 성가리에 있던 진참봉 고택이었던 사랑채를 매입하여 그 앞에 세웠다. 임실 진참봉 안채는 경기도 용인 민속촌으로 팔려버렸는데 사랑채라도 전주에 남게 된 것은 다행이라 여겨진다.

임실읍 성가리에서 옮겨온 진참봉 고택의 사랑채
별채인 정읍 고택은 보천교를 창시한 월곡 차경석이 세운 보천교 본당 부속 건물의 하나로 소유자인 박중조 님이 전주시에 기증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현재 전주 전통문화연수원에서 각종 교육시설로 이용하고 있다.
현재 전라북도에 남아 있는 동헌은 김제시 교동의 사칠헌(事七軒)과 내아가 있으며 익산시 여산면에 여산 동헌, 그리고 정읍시 태인면 태성리에 있는 태인 동헌 등이 있다.
전주동헌이 있는 전주 전통문화연수원은 전주 시민의 문화적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선비의 기개와 전라도의 풍류문화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연수와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옛 선비들의 학문과 문화와 예절을 배움으로써 소통과 배려,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교육으로는 선비의 인사 예절을 배우는 사상견례(士相見禮), 선비의 술 마시는 예법을 배우는 향음주례(鄕飮酒禮), 선비의 활쏘기 예를 배우는 향사례(鄕射禮)를 비롯하여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의 6예(六禮)를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교육과 연수 코스로는 당일 코스가 있고 1박 2일, 2박 3일 코스도 있다.
자녀들에게 일찍부터 선비의 기상과 품위를 심어주고자 하는 부모라면 전주 전통문화연수원에 와서 전주 동헌을 비롯한 고택도 견학하고 선비에 대한 교육과 연수도 받아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