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인이 시골길을 걸어가고 있다.
바쁜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다.
아기를 등에 업고 광주리를 머리에 이었으며 한 손에는 술병이 들려 있다.
샛거리라고 하는 곁두리를 내어 가는 여인이다.
바쁜 농사철에 남정네들이 들판에서 일을 하는데 한나절 새참 때에 곁두리를 내어가는 것이다.
저 모습. 어디에선가 보았던 낯익은 저 모습,
저 여인을 아시나요?
저 여인을 모르는 사람은 한국 사람이 아니다.

여인의 등에 업힌 아이.
내가 그렇게 자랐고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렇게 자랐다. 그 사이 그 여인에게도 세월이 흘러 그 여인의 딸이, 그 딸의 딸이 저렇게 곁두리를 이고 논둑길을 걸어갔다.
어쩌면 저만큼 먼 세월 속에서나 볼 수 있었던 여인.
그 여인을 어디 가면 볼 수 있을까?
지금이라도 그 여인을 볼 수 있다.
전주 진북동 한국은행 전주지점 앞뜰에 가면 그 여인이 있다. 튼튼하게 생긴 몸매의 여인은 광주리를 이고 아기를 업고 있으며 한 손에는 술병이 들려 있다. 결코 고운 자태가 아닌 시골 여인의 모습이지만 이보다 더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 또 있을까?

한창 모내기가 계속되고 있는 오뉴월 들판에서 잠시 쉬고 있는 남정네 곁을 지나온 서울 여인이 물었다.
“저 사람들에게도 각시가 있나요?”
그 물음이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그 서울 여자에게는 머리에 광주리 이고 가는 여인의 아름다움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의 남편이 그런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기절을 할 것이다.
그 여인의 천박한 물음이 지금도 가증스럽다.
한국은행 전주지점 뜰에 가서 광주리에 곁두리를 이고 가는 여인의 조각상 앞에 서면 가슴이 저미어온다.
내 어머니의 모습이다.
다시는 볼 수 없는 내 어머니의 모습이다. 그때에 등에 업힌 아이가 나였다. 얼마나 무거웠을까? 그 아이는 언젠가는 효도다운 효도를 하리라 다짐했지만 끝내 효도다운 효도를 해보지 못한 채 어머니를 저 세상으로 보내버렸다.
가끔 어머니 생각이 나면 진북동 한국은행 전주지점 뜰로 나간다. 조금 떨어진 먼 곳에서 바라보면 내 고향 들판 길을 걸어오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때로는 누님의 모습이 되기도 하고 아내의 모습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들은 모두 이 땅의 어머니다. 그렇게 들판을 가꾸었고 이 땅을 풍요롭게 하였다.
오늘도 아기를 둘러업은 여인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들판을 향하여 걸어가고 있다. 온 들판이 황금색으로 물든 올가을 풍년은 그 여인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