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하다가 죽을 뻔한 양반 소리꾼 권삼득

그의 생가와 묘소를 찾아서

작성일 : 2022-11-11 15:10 수정일 : 2022-11-11 16:43 작성자 : 이용만 기자

 

 

 

길이란 무엇인가?

길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그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작은 길로서는 상당히 길게 벋어 있는 권삼득로를 따라 걸으면서 생각한 것이다.

 

덕진동 호반촌에 있는 전라북도 문학관의 주소가 권삼득로다. 그런데 시청 맞은편 기린로와 나란히 벋은 골목길이 권삼득로인 것이다. 그 길이 이렇게 길게 벋어 있나 하는 의구심 때문에 그 길을 따라 걸어보았더니 맞는 것이었다.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끝에서 완산구 노송동 끝에 이르는 권삼득로는 팔복동 진입부근인 전주천이 끝나고 추천이 시작되는 추천다리 조금 동쪽에서부터 출발한다. 전라북도 문학관을 거쳐 전라북도 국악원을 지나 덕진 공원 정문을 통과한다.

이어서 전북대학교 정문을 지나가며 전북은행을 지나 금암초등학교 교문을 지나간다. 전에 KBS가 있던 이지움 아파트를 지나 모래내 시장의 한쪽을 지나간다. 동부교회를 지나 선미촌이라 일컬었던 거리를 지나면 전주고등학교 정문에 이른다. 시청 맞은편이다. 여기까지가 권삼득로다. 

 

이렇게 길고 긴 길을 걸으면서 그 도로 이름인 권삼득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양반으로서 소리를 하다가 죽을 뻔하다가 집안에서 쫓겨난 사람이라 한다.

내친김에 완주군 용진읍 구억리에 있는 권삼득 생가와 묘소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완주군 용진읍 구억 마을에 있는 권삼덕의 생가

 

용진읍사무소에서 소양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완주로이다. 거기에서 1.5km 정도 가면 구억리 동네가 나온다. 거기에 권삼득 생가가 있고 그로부터 1.2km 동네 뒷산을 오르면 묘소가 있다.

 

  완주군 용진읍 구억리 뒷산에 있는 권삼득의 묘

 

생가는 양반집안이어서 번듯한 기와집이며 묘소는 별로 돌보는 이가 없는지 허술하다. 묘소 옆에 소리굴이 있는데 권삼득은 여기보다는 위봉폭포에 가서 소리를 다듬었다 한다.

 

권삼득은 그냥 소리꾼이 아닌 국창이었다. 삼득이라는 이름은 왕이 직접 내려준 이름이라 한다. 세 가지 음을 득도했다는 뜻이다.

 

권삼득(權三得-1772-1841)은  조선 8명창 중의 한 사람이다.특이한 점은 양반 출신 소리꾼이라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음악적 소질을 타고나서 음익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요즘 같으면 가수로 이름을 날릴 수있었지만 당시에는 소리꾼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본명이 권인정이었는데 권삼득, 권삼보, 권정달, 권생원, 권사인 등으로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가중호걸이라고도 하였다. 

당시에는 양반이 소리를한다는 것은 가문을 더럽히는 일이었다. 권삼득은 권씨 가문을 더럽혔다는 죄목으로 멍석말이를 하여 죽이고자 하였다. 권삼득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소리나 한 번 하고 죽게 해달라고 하였다. 그때에 그는 춘향가의 십장가를 불렀다.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면서 흐느껴 울었다. 이런 재주를 가진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고 하여 가문에서는 추방을 하되 죽이지는 않기로 하였다. 그는 집을 떠나 멀리 가서 살게 되었다. 지금 그의 출생지라고 말하는 익산시 남산리는 그가 집을 떠나 살게 된 곳이다.

 

그의 아버지 권래언의 아호가 이우당(二憂堂)인데, 여기에서 말하는 두 가지 근심이 하나는 이들 삼득이가 소리에 빠져 집을 떠나 얼굴조차 볼 수 없는 것이 첫째요, 또 하나는 아버지 묘를 이장하지 못한 것이라 하였다. 그는 이것 때문에 그 아픔이 간과 명치에까지 사무쳐서 마음이 울적해 큰 걱정거리라 하면서 호를 이우(二憂)로 삼았다고 하였다.   

권삼득은 타고난 소리꾼이었으며 양반의 신분으로 판소리를 고도의 경지로 올려놓은 사람이다. 삼득(三得)이라는이름은사람과 새와 짐승의 소리를 다 터득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는 특히 가마나 말탄 사람이 지나갈 때 위세를 떨치기 위해 역졸이나 하인이 목청을 길게 빼어 부르는 권마성(勸馬聲)을 응용해 "판소리 덜렁제"라는 특이한 소리를 개발해 내었다.

판소리 덜렁제는 당시에 판소리가 설움조라 불리는계면조 일색이었는데 고음으로 계속 되다가 갑자기 소리가 뚝 떨어지거나 낮은음으로 부르다가 갑자기 소리가 솟구치는 도약선율을 사용해 힘있고 장중한 효과를 내게 하는 방법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흥부가 중에서 놀부가 제비 후리러 나가는 대목이나 춘향가 중에서 사령이 춘향이를 잡으로 가는 대목과 심청가에서 남경 뱃사람들이 사람을 사겠다고 외치는 대목이다. 

 

양반의 신분으로 상인들이나 하는 소리를 하였으며 판소리를 높은 경지로 끌어올렸던 소리꾼 권삼득은 천한 신분에서 높은 신분으로 도약했던 사람들과는 반대로 양반의 신분을 벗어던지고 예술의 세계로 뛰어들었던 우리 전북의 진정한 예술인이었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정확하고 빠른 전라북도 소식으로 지역공동체의 건강한 내일을 위한 건강한 정보를 전달드리겠습니다."
저작권ⓒ '건강한 인터넷 신문' 헬스케어뉴스(http://www.hcnews.or.kr)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권삼득 #권삼득생가 #권삼득묘소 #양반소리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