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전주 약전거리는 지금도 한방거리

조선 3대 약령시였던 전주약령시

작성일 : 2022-12-14 21:17 수정일 : 2022-12-15 09:24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약령시(藥令市)는 말 그대로 각종 약재를 매매하고 교환하는 시장을 말한다.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이름난 약령시는 대구와 원주와 전주였다. 조선의 3대 약령시가 바로 전주약령시였다.

전주 약령시가 유명해진 것은 주변의 지리산, 덕유산, 회문산, 내장산, 변산반도 등 천혜의 한약 생산지에서 가져온 품질 좋은 한약재들이 이곳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남부시장 일대는 호남평야에서 생산되는 음식 재료가 모여들어 전라도 음식의 원천이 되었고 그 옆의 약전거리는 주변의 산지에서 모여든 질 좋은 약초가 모여들어 전주약령시를 이루었다. 

 

조선시대 한방 축제인 전주약령시가 열렸던 곳은 다가동 우체국에서 완산다리 사이의 거리로 지금도 한의원과 한약국, 약재상 등 한약에 관련된 업종들이 많이 들어서 있다. 여기에는 전주 약령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전주를 경제적으로 성황케 하였던 박계조의 공적이 큰데 이곳에 “전주약령시 박계조 공적 기념비”가 있고 “전주약령시 창립비”가 약전거리 골목에 있다.

 

 비좁은 골목에 서 있는 전주약령시 영성회 총무 박계조 공적 기념비

 

전주 약령시는 조선시대에 전국적인 약령시였는데 일제가 한일합방을 하면서 폐쇄되었다. 그러다가 1923년 “전주약령시 기성회”가 조직되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이때에 활동한 사람이 박계조다. 그는 약령시 개설 이후 10년 동안 약재 생산비를 사비로 충당하며 약령시 부흥을 도왔다. 그는 전주약령시 영성회의 총무를 맡아 전주약령시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 현재 다가동 전주 보건소 길건너 서쪽 골목 입구에 서 있는 박계조 공적 기념비는 전주약령시 영성회에서 세워준 것이다.

 

1927년 무렵 박계조는 경찰 당국과 교섭을 해 도로변에 점포를 가설하게 하고 야간에도 불을 밝혀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시내 음식점과 여관비를 할인해주고 전주에 도착하는 한약재의 운임비를 반값으로 내려주도록 했다.

 

당시에 전주약령시는 연초에 약 두 달 동안 열렸다.

이때는 약재들이 북한과 만주와 일본에서도 왔는데 중국에서 온 약재를 당재라 하였고 북한에서 온 약재는 북재, 일본이나 남쪽에서 온 약재는 남재라 불렀다.

1933년 1월에 완산동 청학루에서 전주약령시 10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는데 수많은 인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고 한다. 당시에 전주약령시가 열리면 전국에서 5,000여 명의 약재상들이 전주로 모였다고 한다.

당시에 한 해에 약 40만 원 정도의 돈이 전주로 몰렸는데 그때 금 한 돈에 7원할 때였다. 오늘날의 화폐로 환산하면 140억 원에 해당한다고 한다.

 

  전주 약령시 창립비

 

1934년 2월부터는 전주약령시가 주최하는 한방의학강습회가 전주공회에서 열렸는데 수강생이 500명에서 1,0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한때는 대구약령시를 제치고 전국 제일의 약령시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43년 조선총독부는 “생약통제령”을 내리고 약령시를 폐지시키고 말았다.

 

현재 이곳에는 약전거리에 대한 안내판과 박계조 기념비, 전주약령시 창립비가 있고 전주미래유산 26호의 약령시거리 표지판이 있다.

 

한 때는 조선 팔도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까지 약재를 가지고 몰려들었던 전주약령시는 비좁은 골목에 겨우 몸을 의지하고 서있는 기념비만큼이나 비좁은 거리에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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