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제일의 물맛을 간직한 교동 쌍샘

태조 이성계가 평생 못 잊어하던 샘물

작성일 : 2022-12-18 09:01 수정일 : 2022-12-19 09:01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이곳은 전주 교동 오목대 산동네 아래다.

이목대라고 부르는 발리산 골짜기로 이어진 곳인데 양쪽으로 산동네가 있는 오목한 곳이다.

이곳에 쌍샘이 있다. 윗샘과 아랫샘으로 두 개의 샘물이 있다. 이곳 쌍샘은 ‘쌍시암’이라 부르기도 하고 ‘묵샘’이라고도 부른다.

태조 이성계가 오목대에 왔을 때에 이 샘물을 마시고 평생을 못 잊어했다고 할 만큼 물맛이 좋은 곳이다.

 

이 물로 녹두묵을 만들면 간을 따로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물맛이 좋았다고 한다. 녹두묵뿐만 아니라 도토리묵도 이곳 물로 만들었기 때문에 묵을 만드는 곳이 되었고 이곳을 ‘묵샘골’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묵뿐이 아니고 콩나물이나 미나리, 무, 배추 등 어떤 채소든지 이 물로 씻으면 맛이 달라졌다고 한다. 특히 전주 음식을 대표하는 콩나물국밥은 이 우물물로 만든 것이 제일이었다 한다.

 

쌍샘의 효험은 이 근방 사람들이 쌍둥이를 많이 낳게 되는 결과를 빚었다. 여기 저기에서 쌍둥이가 태어난 것이다.  자식을 두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곳의 쌍샘 물을 마시면 쌍둥이를 낳는 효과가 있어 한 때는 이 근방에서 10 쌍둥이가 태어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쌍샘 중 하나인 작두시암에서 펌프질하는 관광객  

 

지금 이곳에는 작두시암이라고 부르는 펌프질을 하는 샘과 사각샘 두 개가 조금 떨어져서 나란히 있다. 그리고 품어놓은 물이 흘러가는 실개천이 있고 한쪽에는 폭포도 만들어 놓았다.

관광객들은 작두시암에서 펌프질을 해볼 수 있으며 사각 샘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려 볼 수도 있다.

 

 쌍샘 중 하나인 사각샘 

 

이곳은 필자가 교육대학에 다닐 때에 동생과 함께 자취를 하며 살았던 동네다. 오목대를 등지고 산비탈에 있는 산동네에서 살았다. 이 샘에서 물을 길어 꼬불꼬불한 산비탈을 물지게를 지고 올라가곤 했다.

그때는 말만 쌍샘이었지 우물이 하나밖에 없었다. 그래도 물이 풍부하여 그 근방 사람들이 모두 우물물을 퍼다 먹고살았다. 우물을 사이에 두고 양쪽 산비탈에 집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는 산동네였다. 물맛은 좋았지만 이태조가 평생 동안 못 잊어할 만큼 좋은 물인 줄은 모르고 살았다.

지금 나이 먹고도 건강하게 사는 것이 그때에 쌍샘 물을 먹어둔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쌍샘 거리에 붙어 있는 쌍샘 안내판

 

지금은 오목대 쪽에 있던 산동네는 모두 철거를 하여 편의시설을 했고 필자가 살던 집도 없어져 버렸다. 지금 작두시암이 있던 곳도 집들이 있던 곳이다.

 

오목대는 필자하고 인연이 깊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에 교장 선생님께서 시청에 가서 오목대가 민둥산이니 우리 학교 학생들이 나무를 심어 가꾸겠다고 청하여 식목일을 맞이하여 전교생들이 오목대에 가서 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1인 1나무 가꾸기로 결연을 맺어주어 물을 주고 거름도 주면서 자기 나무를 가꾸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 기념으로 백일장을 열었다. 그때에 내가 쓴 글 제목이 “나는 오목대의 소나무입니다”였다. 나에게 주어진 나무가 소나무였기 때문이다. 소나무를 심고 가꾸어주는 학생에 대한 고마움을 소나무 입장에서 의인법으로 쓴 글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1학년인 나에게 장원이라는 큰 상이 돌아왔다.

그때에 전주제일고등학교에는 시인 신석정 선생님이 계셨다. 신석정 선생님은 나를 교무실로 부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글을 잘 쓰는구나. 글을 쓰는 사람은 가난해도 글을 써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말씀을 오랜 세월 동안 따르지 않았다. 뒤늦게 나이 들어서야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신석정 선생님께 두고두고 죄송할 따름이다.

 

다시 올라가서 본 오목대에는 전과는 많이 달라져 있다. 나무들이 크게 자랐고 산책길도 나 있다. 편의 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내가 전에 심었던 나무가 있던 자리는 나무는 어디로 가버리고 산책길로 다듬어져 있다. 전에 하나였던 쌍샘이 두 개로 복원되고 산동네도 말끔히 단장되었다. 시내 쪽에는 바로 눈앞에 있던 문화연필 공장도 없어지고 칙칙하던 한옥마을이 환해졌다.

 

쌍샘은 자리는 그 자리지만 주위의 집들을 헐어 조경을 갖추어 낯설어졌는데 오목대는 나의 학창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채 여전히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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