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남부시장 고물자 골목에는 지금

한때 패션의 유행을 이끌던 아련한 추억의 거리

작성일 : 2022-12-21 09:13 수정일 : 2022-12-29 15:49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유행은 바뀌기 마련이고 새로운 시대가 오는 것은 정해지지 않은 법칙 중의 법칙이다. 유행은 한 번 흘러가면 다시 온다 해도 변형으로 온다. 그래서 돌고 도는 것이 유행이라 하지만 나사식으로 돌기 때문에 그대로 오지는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보고풍이다. 옛날 형식을 빌리되 변형된 옛날이다.

 

그러나 한 번 흘러간 뒤에 다시는 오지 않는 유행도 있다.

그중에 하나가 미군들의 군복을 고쳐서 입던 고물자 바지다. 그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는 곳이 남부시장 고물자 골목이다.

 

“성, 혹시 학창 시절에 미군바지 줄여서 입어보았나요?”

“입어보았지.”

“어디에서 줄여 입었나요?”

“글쎄 어디였더라?”

“그곳이 남부시장 고물자 골목이 아니었나요?”

가물가물한 반세기도 더 지나간 추억을 들춰내는 사람은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

 

그래, 그랬던 것 같다. 미군 군복을 까맣게 염색을 해서 고쳐 주었던 소문난 곳이 있었다. 몸에 맞지도 않고 헐렁하고 볼품없었던 그 옷이 한 뭉텅이 흘러가버린 세월의 저쪽에서 아른거린다. 기지가 좋았던지 떨어지거나 닳지도 않아 오래 입었던 교복 외의 단골바지다.

 

그 골목을 가보잔다. 이름 하여 전주 남문시장 “고물자 골목”이다.

고물자 골목은 남부시장 남문에서 서쪽으로 조금 가면 입구가 있는데 그냥 스쳐 지나가면 찾지 못하고 지나간다. 여느 상점 인양 상점 간판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상점 간판 위에 아치 모양으로 둥글게 “고물자 골목”이라는 간판이 하나 더 얹어 있다.

 

그러나 골목을 들어서면 금방 이곳이 고물자 골목이 맞는구나 하는 분위기를 눈치 챈다. 간판 모양도 허술하게 한복 바느질집과 옷 수선집들이 눈에 띄기 때문이다.

 

이곳은 1950년 한국전쟁 이후 미군 구호물자 보급품이 거래되면서 호황을 누렸던 골목이었다. 그 후 미군 군복 염색과 수선의 거리가 되었다. 질기기로 소문난 미군 군복은 이곳에 와서 검은색으로 염색을 해서 사람의 체형에 맞게 줄여주는 일들을 이 골목에서 했다. 그 옷들은 가난했던 청년들의 단골 바지가 되었다.

 

그 후 청바지가 등장하면서 청바지를 판매하고 수선해주는 일을 하게 되어 “청바지 골목”으로도 불렸다.

또 골목 끝에 전에 시외버스 정류소가 있었던 곳이기도 하여 ‘배차장 골목’이라고도 불렀으며 ‘오꼬시 골목’ 또는 ‘양키 골목’이라고도 불렀던 곳이다.

 어둡고 좁고 한산한 골목이 되어버린 고물자 골목 

 

한때 학생들의 교복 물려 입기가 있었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는 이곳이 교복 수선 골목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에게서 물려받은 교복을 자기 체형에 맞게 수선해 주기도 했고 멋쟁이들이 학교에서 정해준 교복 규정을 살짝 어겨가는 멋을 부리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여학생들은 치마의 길이를 줄이는 일을 했다. 멋쟁이 여학생들은 치마의 길이를 짧게 했다. 무릎 위로 올라오게 줄여서 교문을 통과할 때는 규율부원들의 눈을 피해 치마 단을 아래로 내려 무릎 아래로 내려오게 하고 교문을 통과하면 치마 단을 위로 올려 짧게 입었다. 아주 멋쟁이 여학생은 아예 교복을 두 개 만들어 가방에 넣고 다니며 바꿔 입기도 하였다.

남학생들은 바지통을 줄이거나 길이를 줄이는 일을 했다.

그때의 그 멋쟁이들은 공부보다는 멋 부리는 일에 신경을 썼는데 지금 생각하면 교복을 고쳐 입을 생각마저도 하지 못했던 범생이보다는 세상을 이미 알고 앞서가는 학생들이었다.

 

당시에는 교복뿐만 아니라 교련복도 수선했고 예비군복이나 경찰복도 수선의 대상이었다. 말하자면 시대에 따른 젊은이들의 패션을 이끌었던 곳이기도 하였다.

 

이곳은 근대에만 패션을 이끌었던 곳이 아니고 이미 조선 시대부터 부유층의 혼수나 장신구를 판매하던 “은방 골목”이었다.

 

 고물자 골목 중간에 서 있는 안내판

 

지금은 한산하고 쓸쓸한 골목이 되어 조용하다. 다만 골목 한 가운데 ‘고물자 골목’에 대한 안내판이 하나 서있다. 거기 이렇게 쓰여 있다.

“지금 우리가 선 이 길은 고지도상에도 선명하게 확인되는 오랜 옛길이다. 조선 시대 남문 밖 시장의 생동감을 실어 남문에서 서문으로 이동하던 번화가의 기억을 품은 길이다. 1950년대에는 미군부대 구호물자 보급품들이 거래되는 호황의 거리이기도 하였다. 1960~1970년대에는 군복 염색 상가가 이어지고 땅콩 볶는 향기와 함께 통기타와 어울리는 청바지 쇼핑의 메카였다. 1980~1990년대에는 교복 수선집들이 줄을 이어 치마 길이와 바지통의 유행을 선도했으니 시대별 ‘패셔니스타’ 청춘들의 은밀한 성지라 할만하다. 40년 이상의 수선집과 한복 바느질집, 새롭게 자리 잡은 신세대 바느질 공간도 만날 수 있다. 저마다의 기억으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이다.”

 

전주시가 이곳을 대상으로 도시재생 활성화 사업을 벌인다고 한다. 행여 전에 있던 것들을 부수어 옛 정취를 없애고 새로 짓는 일을 하지는 않을가 염려가 된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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