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곡교 아래 갈대밭에 서 있던 가수 고복수
아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 젖은 이즈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
1930년대에 고복수(1911~1972)가 불러서 수많은 가요팬들을 열광시켰던 '짝사랑' 노래다. 그러나 그 노래가 생기게 된 배경이 전주천의 매곡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고복수는 1932년에 전국 신인가수 선발대회에서 ‘타향’이라는 노래를 불러 입상하여 가수로 등단하였으며 이 노래는 후에 '타향살이'로 바뀌어 불러지게 되었다. 타향살이와 더불어 고복수를 최고의 가수가 되도록 만들어준 곡이 '짝사랑'이다.
그 후 고복수가 소속된 조선 악극단은 유명해져 전국을 누비며 공연을 했고 외국에까지 나아가 공연을 할 정도였다.
박영호 작사 손목인 작곡으로 되어 있는 짝사랑의 노래가 생기게 된 데는 한 가지 숨은 이야기가 있다.
고복수가 서른다섯 살이 되던 1936년 가을
조선악극단이 전주에 왔다. 인기 절정에 있었던 수많은 팬들로부터 전화받기를 좋아했던 고복수는 여관에 머물면 전화가 있는 특실을 요구했다. 당시에는 특식에만 전화가 있었다. 당시 노총각이었던 고복수에게는 여성들에게서 전화가 많이 왔다.
아직 연애다운 연애 한 번 못해본 고복수를 골려주기로 작정한 일행들이 단원 중 한 여성을 시켜 고복수를 만나자고 전화를 하였다. 가슴에 빨간 꽃을 꽂고 오라는 주문까지 했다. 그 장소가 초등학교가 있는 냇가의 다리 아래라고 알려주었다.
당시에 여관 근처의 초등학교는 완산초등학교였고 냇가의 다리라면 매곡교였다.
고복수는 그 말을 철석같이 믿고 매곡교 다리 아래로 가서 억새가 바람에 흔들이는 풍경을 보면서 여인을 기다렸다. 해가 지고 조각달이 이즈러질 때까지 기다리다 돌아왔다. 그런데 고복수는 다음 날도 또 가서 기다렸다. 날짜를 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인이 잘 모르고 이날 나올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며칠을 그렇게 허탕을 치고 나서야 포기했다고 한다.

가수 고복수가 여인을 가다렸던 전주천 매곡교와 다리 아래 억새밭
공연이 끝나고 서울로 돌아가서 일행으로부터 그 이야기를 들은 작사가 박영호가 고복수의 심정을 담은 노랫말을 지어 주었고 손목인이 작곡을 하여 고복수에게 부르도록 하였다. 애절한 사랑의 아픈 사연을 담은 짝사랑은 금방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고복수의 대표곡이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아 아~ 뜸북새 슬피 우니 가을 인가요
잊혀진 그 사랑이 나를 울립니다.
들녘에 떨고 섰는 임자 없는 들국화
바람도 살랑살랑 맴을 돕니다.
가요 '짝사랑'은 대중가요 중에서 시적 구성이 매우 뛰어난 노래로 알려지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으악새 우는 가을날의 쓸쓸한 정취와 짝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사람의 마음이 어울려 누구나 한 번씩은 겪었을 짝사랑에 대한 가슴 아려오는 정서를 만들어낸 것이다.
세월은 흘러가 고복수는 갔어도 그가 불렀던 ‘짝사랑’ 노래는 여전히 지금도 불리고 있고 노래를 탄생시킨 전주천 매곡교도 그대로 있다. 매곡교 아래에는 으악새라 불리는 억새가 오늘도 다리 아래에서 바람에 으악 으악 울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