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건물만 극장처럼 생긴 상가자리 전주극장
극장은 한때 가장 첨단을 걷는 문화시설이었다. 움직이는 사진을 볼 수 있는 신기한 장소였다. 그리고 “대한 늬우스”라는 우리나라 최근 소식을 보고 들을 수 있는 곳이었다.
영화라는 것을 통하여 연극에서는 볼 수 없는 넓고 광활한 풍경을 볼 수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 전쟁 상황도 볼 수 있었다. TV가 없던 시대의 유명한 배우들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극장에서 영화가 끝나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나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단체 영화 관람이라는 행사를 통하여 극장을 드나들 수 있었다. 학교에서 단체로 보는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다음 날 학교에 가면 할 이야기가 없어 왕따나 다름없었다.
청춘 남녀가 사귀기 가장 좋은 곳이 극장이었다. 남녀가 선을 보고 나서 극장에 가서 영화를 같이 보면 혼사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였다. 어두컴컴한 장소에서 나란히 앉아 같은 이야기에 심취하다 보면 이심전심 마음이 통해 슬쩍 손도 잡아볼 수 있는 곳이 극장이었다.
전주에서의 최초의 극장은 어디였을까?
노송동 병무청 부근에서 시작하여 서쪽 전주천까지 이어지는 관통로라 일컬었던 충경로를 따라 객사까지 와서 서쪽으로 조금 가다 보면 도로변에 “옛 전주극장” 안내판이 하나 서있다. 그 안내판이 서 있는 건물은 디자트 가구 건물이다. 한쪽에는 브랜드 가구라고 쓰여 있다. 이 건물이 서 있는 자리가 전주 최초의 극장이었던 자리다. 지금도 자세히 보면 겉모양이 극장식으로 되어 있다.

전주에서 최초의 극장이 있던 자리
전주 최초의 극장은 일제강점기 때인 1925년 9월에 개관한 제국관이었다. 본래 제국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빨간 벽돌 건물로 595석의 큰 규모였다.
해방이 되자 제국관은 관영극장인 '전라북도립극장'으로 바뀐다. 당시에 전라북도립극장은 영화 상영 외에 “가수 고복수 공연”, “김백초의 무용발표회” 같은 예능 발표회 장소가 되었다.
1957년 극장 운영권이 민간으로 이관되면서 “전주극장”으로 이름이 바뀐다. 지붕을 기와로 얹은 2층짜리 957석이었다.
전주극장은 1980년까지 운영되다가 그 자리에 전주백화점이 들어서면서 300석 규모의 작은 극장으로 축소되어 1990년대 후반까지 운영되었다.
전주극장은 전주의 최초의 극장이라는 명예를 안고 있으며 당시의 전주 사람들에게 영화를 통한 갖가지 추억을 제공하고 있다.
옛 전주극장 안내판에는 1986년 전주극장 건물의 사진이 희미하게 게시되어 있다.
필자가 중‧고등학생 시절이었던 1960년대에는 전주극장 외에 몇 군데 극장이 있었다. 팔달로에 오스카극장이 있었고 지금의 영화거리에 삼남극장과 코리아 극장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극장보다 학생들하고 친했던 극장은 당시에 시외버스정류장 옆에 있던 중앙동의 중앙극장이었다.
본래 학생들은 학교에서 허락하는 단체 관람 외에는 극장 출입이 통제되었다. 그래서 훈육 선생님들이 극장에 와서 감시를 했다. 만일 극장에 들어갔다가 발각이 되면 선생님들은 무조건 명찰부터 낚아채어 뜯어갔다. 그때는 학교마다 명찰의 모양과 색깔이 달랐기 때문에 명찰을 보면 어느 학교 학생인지 금방 알 수가 있었다. 명찰을 뜯긴 학생은 다음날 훈육선생님에게 붙들려가 혼이 났다. 경우에 따라서는 몽둥이세례도 받고 정학도 당했다.
그런데 중앙극장에서는 학생 입장 가능한 영화는 슬쩍쓸쩍 입장을 시켜 주었다. 어느 때는 ‘학생입장 불가’라고 쓰여 있는 영화도 볼 수 있었다.
“저 쪽에 가서 교복 뒤집어 입고 와.”
학생은 외출할 때에도 사복이 허용되지 않던 시대여서 교복을 입고 다녀야 했던 시대였다. 교복을 입지 않고 사복을 입고 다니는 학생은 불량학생으로 간주하였다. 교복을 뒤집어 입고 오면 얼른 들여보내 주었다. 필자도 친구를 따라 학생 입장 불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래서 극장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아 있는 극장이 중앙극장이다.
"동상, 학창시절에 중앙극장에 가서 몰래 영화본 적 있는가?"
"당근이지요."
"그곳이 어디쯤인지 종잡을 수가 없네."
"알려드리지요."
이번에는 주객이 전도 되었다. 내가 묻고 그가 대답한다.
그러면 그렇지. 천판욱 선생에게 재야 인문 사학자라는 말을 그냥 붙여 주었을 리가 없지. 전라북도의 사적지나 유적지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쪼끔만 있는 사람이니까.
"이 근방인데요. 아마 저 건물이 그때 중앙극장이 있던 자리일 겁니다."
그런 것 같다. 이 골목이 맞다. 한 갑자도 더 흘러간 추억의 저쪽에서 교복 입은 학생들이 극장을 들락거린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드나들었던 중앙극장이 있던 거리
삼양라면이 처음 나왔을 때에 공짜로 라면을 끓여주던 곳이 극장 앞이었다. 라면 맛을 모르던 사람들에게 라면 맛을 보여주기 위하여 극장에서 나오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라면을 끓여 주기도 하였다. 약간 느끼한 맛에 먹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일단은 맛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컬러 TV가 나오면서 극장은 문을 닫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계속하여 성업을 하고 있는 극장들이 새로운 문화를 이어가고 있지만 그래도 옛날 극장의 맛을 요즘 와서 느껴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한 움큼의 세월이 흘러가버린 이 시점에서 관통로라 불렀던 충경로에 서서 형태만 남은 전주의 최초 극장이었던 전주극장 건물을 바라보노라니 영화 필름처럼 많은 옛이야기들이 끝없이 스쳐지나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