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 이병기 선생 체취 가득한 양사재
전주 한옥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을 때에는 꼭 명심해야 할 일이 있다.
다른 관광지에서처럼 일반 호텔이나 최신 시설을 갖춘 게스트 하우스에서 묵고 가는 사람은 참 미련한 사람이다. 다른 관광지에서야 어느 곳에서 묵어도 좋을 것이지만 전주에서만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전주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에서 전주의 향취를 흠뻑 품고 잠을 잘 수 있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냥 잠만 잘 것 같으면 아무 곳에서나 자도 된다. 그러나 어차피 전주에 왔으니 전주다운 곳에서 묵어야 또 다른 관광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중에 하나가 한옥마을의 양사재(養士齋)가 있다.
이곳은 한국 시조의 일인자라고 할 수 있는 가람 이병기 선생이 거처하던 곳이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는다면 가람 선생과 함께 잠을 자는 것이다. 가람 선생의 체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가람 다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가람 선생과 대화를 하는 것이다. 가람 선생의 시조도 한 수 읊어보는 것이 좋다.

가람 이병기 선생이 머물렀던 양사재 건물
“성님, 양사재에 대한 글 준비하고 있지요?”
나를 양사재로 인도하였던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의 독촉 문자다. 좋은 곳을 안내해주고 양사재 주인하고 이야기도 하게 해 주었는데 까마귀 고기를 먹은 듯 잠잠하니 궁금하였나 보다.
서둘러 양사재에 대한 글을 마무리할 수밖에.
양사재(養士齋)는 가람 이병기 선생이 숙소로 머물던 곳이다. 서울대학교에서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가 한국전쟁을 계기로 전주에 내려와 전북대학교에서 국문학과 교수로 있을 때에 이곳에서 머물렀다. 1951년부터 5년 동안이나 머물렀던 곳이니 의미가 깊다.
이곳은 전주 이 씨의 발산지인 발리산이라 불리는 이목대의 산자락 아래다. 아늑한 곳이며 오래된 고택이다. 전주미래유산 29호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양사(養士)라는 말은 기를 양(養) 자에 선비 사(士) 자다. 선비를 기른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양사재란 선비를 기르는 엄숙한 곳이라는 말이다.
이곳은 전주향교의 부속 건물이었다. 과거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공부하던 곳으로 선비들이 선호하던 곳이었다. 진사시험에 합격하면 이곳에서 부표(附標)를 해줄 만큼 권위가 있는 곳이었다.
양사재의 가람다실은 가람 선생이 묵었던 방이다. 가람 선생은 이곳에서 우리말을 연구라고 시조를 짓고 난을 쳤다. 그를 따르던 제자들이 들락거리던 곳이기도 하다.
가람다실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가람 선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시조에 대하여 이야기하면 마치 당시에 가람 선생이 제자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가람 이병기 선생이 묵었던 양사재의 가람다실
양사재 주변에는 많은 문화재들이 있다. 멀리 안 가도 한참 동안을 둘러보아야 할 만큼 볼거리가 많다. 바로 옆에는 전라북도의 향교를 대표하는 전주향교가 있다. 향교 옆에는 간재 선생의 제자들이 살았던 고택들이 있다. 그리고 한벽루가 있고 오목대가 있다. 이삼만 선생이 살았던 벽화마을의 옥류동이 있다. 전주천을 건너면 국립무형유산원이 있다.
밤이면 바로 앞을 흘러가고 있는 전주천 물결소리가 들리는 곳이다. 이곳에서 하룻밤 묵으면서 양사재 마당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며 학창 시절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가람 선생의 시조 ‘별’을 한 수 읊어보는 것도 전주 관광의 또 다른 맛일 것이다.
별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 어느 게요
잠자코 홀로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