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에도 아리랑 고개가 있다

국도 1호가 지나가던 농고 뒷산 길

작성일 : 2023-01-06 10:49 수정일 : 2023-01-28 08:40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

 

아리랑은 이제 세계적인 노래가 되었다.

세계 각국의 가는 곳마다 코 크고 머리 노란 사람들이 꼬부라진 혀로 아리랑을 부른다.

미국의 교회 찬송가에도 올라 있고 스페인 초등학교 교과서에도 올라 있다 한다.

 

아리랑은 곧 아리랑 고개다. 아리랑 고개가 없는 아리랑은 생각할 수가 없다. 아리랑 고개는 한 많은 고개요 설움의 고개다. 한의 민족이라고 할 만큼 많은 한을 안고 살았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아리랑을 부르며 살아왔다.

 

아리랑 고개는 실제로 있는 고개인가? 어디에 있으며 얼마나 높은 고개였는가? 해발 몇 미터짜리 고개인가?

그것은 용이나 봉황이 실제로 있었던 동물이냐는 물음과 같을 것이다. 용궁이나 무릉도원, 이어도가 실제 있었던 것이냐는 물음과도 상통한다. 어디에도 없는 고개는 어디에라도 있을 수 있는 고개다.

 

그러기에 우리나라에는 곳곳에 아리랑 고개가 있다. 구불구불 넘기 힘든 고개가 아리랑 고개다. 그러기에 한 서린 이야기가 있는 곳에 아리랑 고개가 있다. 서울에도 있고 부산에도 있다.

 

서울에 있는 아리랑 고개는 성북구 돈암동에서 정릉동으로 넘어가는 곳에 있다. 본래 정릉고개라 불렸는데 1926년 나운규가 이곳에서 아리랑 영화를 촬영한 후에는 아리랑 고개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 후 고급요정 청수관이 들어섰는데 장소를 아리랑 고개에 있다고 알리면서 아리랑 고개로 굳어졌다.

 

부산에는 영도의 동래동과 동구의 좌천동 사이의 고갯길을 아리랑 고개라 부른다. 한국전쟁 때에 부산으로 몰려온 사람들이 판자촌을 이루었던 곳이다. 이 고개는 아리랑치기와 관련이 있다. 술에 취해 비틀비틀 고갯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모양에서 아리랑이 나왔고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소매치기를 하던 사람들을 아리랑치기라고 불렀다.

 

경상북도 상주에도 아리랑 고개가 있다.

이곳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 때에 상주 농민군이 예천 농민군과 힘을 모아 상주읍성을 점거했다. 후에 농민군은 일본군과 관군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당했는데 시신을 방치해 두어 가족들이 시신을 달구지에 싣고 상주읍성 북문으로 나와 묻은 곳이다. 이때의 설움이 얼마나 컸겠는가. 그래서 이 공동묘지가 있는 고개를  아리랑 고개라 불렀다. 이곳은 안동, 예천, 사벌 사람들이 상주장을 보기 위해 넘나들던 고개다.

 

우리나라의 아리랑은 크게 세 가지로 불린다. 강원도 정선 아리랑과 경상도 밀양 아리랑, 그리고 전라도의 진도 아리랑이다. 정선 아리랑은 선율의 변화가 크지 않고 잔잔한 흐름을 유지한다. 마치 소박한 여인의 설움을 내포하고 있는 가락이다. 밀양 아리랑은 힘이 있고 남성적이다. 진도 아리랑은 신명 나고 흥이 나며 기교성이 두드러진다.

 

그중에서 정선 아리랑이 가장 오래된 아리랑으로 여긴다.

정선 아리랑에 대한 유래는 고려가 망하자 고려 왕실을 받들던 유신 72명이 송도 두문동에 숨어 살았다. 그들은 산나물을 뜯어 먹으며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곳도 노출이 되자 그중에서 전오륜을 비롯한 7명이 정선으로 숨어 들어와 살았다. 그들은 고려 왕조와 두고 온 고향과 가족들을 생각하며 한시를 지어 마음을 달랬는데 후세 사람들이 그 시를 풀이하여 부른 것이 정선 아리랑이라고 한다.

 

그런데 전주에도 아리랑 고개가 있다.

 

 전주 인후동 농고 뒷산을 넘는 아리랑 고개

 

목포에서 출발하여 서울로 가는 길을 국도 1호라고 부른다. 그 국도 1호 길이 전주를 벗어나는 고개가 아리랑 고개였다. 모래내에서 조금 올라오면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가 나온다. 그 농고를 지나 심방죽을 거쳐 위브어울림 아파트 후문에 이르는 오르막길이 아리랑 고개였다. 이곳에서 명주골로 빠져나가 봉동과 고산을 거쳐 서울로 가는 길이 국도 1호인 것이다.

 

지금은 고개라고 부르기에도 어울리지 않은 오르막길이지만 이곳은 전주의 주산인 승암산이라고 부르는 성황산 줄기가 기린봉을 거쳐 마당재를 지나 인후공원 도당산에서 방향을 돌려 금암동으로 벋어나가는 산줄기다. 전에는 결코 낮은 고개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 고개를 넘으면 전주를 벗어나는 곳이었다. 전주를 벗어나는 고갯길에서 뒤를 돌아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 가지 회포가 가슴을 쳤을 것이다. 지금 떠나면 언제 다시 돌아올까 생각했을 것이다. 반드시 성공하여 금의환향하리라 다짐도 하였을 것이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독한 마음도 먹었을 것이다.

어떤 이는 사랑하는 임을 이 고개까지 배웅을 나와서 울며 부여잡고 서러운 이별도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아리랑 고개라고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지금 이곳은 아리랑 고개라는 아무런 표식도 없고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아는 사람들이 없다. 사람들 기억에서 아주 사라지기 전에 안내판 하나쯤 세워놓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정확하고 빠른 전라북도 소식으로 지역공동체의 건강한 내일을 위한 건강한 정보를 전달드리겠습니다."
저작권ⓒ '건강한 인터넷 신문' 헬스케어뉴스(http://www.hcnews.or.kr) /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전주 #아리랑고개 #전주아리랑고개 #국도 #농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