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물건은 수요가 늘어나면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다.
그러나 아무리 수요가 늘어도 손으로 직접 만들어야 하는 것들이 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전주의 부채다.
전주의 부채는 조선시대에 선자청(扇子廳)이라는 관청을 두어 부채를 전문적으로 만들었다. 이 부채는 한양 궁궐로 가져가 임금님에게 진상하였고 임금님은 직접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는 하사품이었다.
단옷날이 오면 임금은 으레 부채를 선물로 주었고 신하들은 부채를 받을 준비를 했다. 부채를 받은 신하들은 소중하게 간직을 했다.
전주의 부채는 어디에서 만들었을까?
궁금하면 물어보면 된다. 모르는 것 빼놓고는 다 아는 사람,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
“전주의 부채를 만들던 곳이 어디인 줄 아는가?”
“아중리 가재미 마을이라고 합니다.”
아중리에 그런 마을도 있었나? 지도를 놓고 살펴보니 ‘가재미 어린이 공원’이 있다. 그것도 “북 가재미 어린이 공원‘이 또 하나 있다. 그럼 두 가재미 공원 사이에 가재미 마을이 있을 것이다
‘가재미 어린이 공원’ 부근의 골목 주소들이 ‘가재미 길’이다. 이곳이 옛날 가재미 마을이 분명하다. 이곳은 현재 인후초등학교 부근이다. 조금 떨어진 곳에 인봉초등학교가 있다. 인봉리는 후백제를 세운 견훤이 궁궐터를 다듬던 곳이다. 상서로운 마을이 분명하다. 그래서 이곳에서 임금님께 진상하였던 부채가 만들어졌던 것인가 보다.

이곳이 부채 공방이 있던 가재미 마을이었던 것을 말하여 주는 가재미 공원
마을을 둘러싼 지형의 형태가 바다 물고기 가자미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러나 높은 곳은 깎아내리고 낮은 곳은 메꾸어서 도시를 만들어버려 본래의 모양은 볼 수도 없어 이름만 가재미 마을이다.
전주 부채는 질 좋은 전주의 한지와 주변의 질 좋은 대나무의 공급이 원활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오랫동안 부채를 만들어 오던 전주이기에 부채 만들기를 가업으로 이어오는 사람들이 있다. 5대째 부채 만들기를 가업으로 이어오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가재미 마을에 지금도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다른 곳으로 이사 가고 마을 이름만 남아 있다.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부채를 만드는 선자방들이 흩어져 있다.
부채를 만드는 곳을 선자방이라 한다. 만드는 부위에 따라 방이 여러 개로 나뉜다. 부챗살을 만드는 골선방, 때를 빼내고 빛이 나게 하는 광방, 합죽한 부채에 인두로 무늬를 새겨 넣는 낙죽방, 선지에 산수나 화조를 그려 넣는 그림방, 부채에 선지를 바르는 도배방, 부채의 목을 묶는 사북방 등의 여러 과정을 거친다.
부채 중 으뜸은 임금님께 진상되었던 합죽선인 태극선이다. 태극선을 만들기 위해서는 대나무를 일정한 긁기로 쪼개어 납작하게 만드는 절죽 작업. 선지 위에 풀을 칠한 뒤 살을 알맞게 배열하는 살 놓기, 살 위에 풀칠을 한 후 선지에 살을 밀착시키는 과정, 태극선 문양 선면에 붙이기, 선면을 부채 형태로 재단하기 등의 과정을 거친다.
부채의 쓰임은 다양하다. 더울 때 바람을 일으키는데 쓰이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의 격을 높이는 데도 쓰였다. 전에 양반들은 그럴듯한 부채 하나 들지 않으면 양반답지 못했다. 판소리 하는 사람들이나 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품이다.
삼국지에 보면 제갈공명이 부채 끝에 학의 깃털이 달린 학우선을 들고 다녔다. 삼국지에는 없는 이야기로 제갈공명의 학우선은 그의 부인이 권하여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 한다. 제갈공명에게 사람을 대할 때 그 사람에 대한 감정이 얼굴에 나타나니 그것을 감추기 위하여 부채를 사용하라고 했다고 한다. 학우선은 제갈공명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고 제갈공명은 죽는 날까지 그 학우선을 들고 다녔다. 제갈공명이 죽는 장면은 학우선이 스르르 손에서 떨어져 나오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전주의 부채 명인들을 살펴보려면 단오 무렵에 이루어지는 전주 부채 명인전을 가보면 알 수 있다. 전주부채문화관 10주년 기념으로 열렸던 ‘전주단오 부채전’에 출품된 명인들을 보면 국가무형문화재 제128호인 선자장 김동식, 무형문화재 10호인 합죽선 이기동, 태극선 조충익을 비롯하여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10호인 선자장 방화선, 엄재수, 박계호,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51호인 낙죽장 이신입,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명예보유자 박인권, 전주부채 장인 박상기, 이정근, 대를 이어 전주 부채의 맥을 이어가는 이수자, 김대성, 송서희 등의 명인들이 등장한다.
전주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이 귀한 선물로 부채를 선택한다. 축하할 일이 있거나 기념할 일이 있을 때에는 하얀 민부채에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써서 준다. 그러면 그것이 최고의 선물이 되는 것이다.
조선의 3대 명필이었던 이삼만이 한벽루에 바람 쐬러 나왔다가 부채가 팔리지 않아 낮잠을 자고 있는 부채 장사의 부채에 일필휘지 휘둘러 글씨를 써넣었더니 글씨를 알아본 중국 상인들이 눈 깜짝할 새 부채를 사갔다는 일화가 있다.
필자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는 부채가 몇 개 있다. 정년퇴임 기념으로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께서 부채에 퇴임 기념 시를 써서 주신 부채가 있다.

정년 퇴임 때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께서 선물로 주신 부채
송공(頌功)
-이용만 교장 정년퇴임에 부쳐-
날갯짓 길들이던 그림 한 폭 삼삼한데
나팔 소리 없는 길에 마주 웃는 주름살은
담담한 이야기여라 청출어람 그 향기
- 계사년 팔월 이십이 일 옛날 담임 노업 짓고, 한샘 박상애 쓰다 -
그리고 정년퇴임을 축하하는 자리에 함께 했던 분들의 축하 메시지가 담긴 부채가 또 하나 있다.

정년퇴임 때 친우들의 축하메시지가 쓰여 있는 부채
양만호 화백이 영전 기념으로 준 매화 그려진 부채도 있고 손녀 민서가 유치원에서 만든 ‘할아버지 사랑해요’라는 글씨가 쓰여 있는 부채도 있다.
전주 부채의 선자방이었던 아중리 가재미 마을은 지금은 부채 장인들은 떠나고 이름만 간직한 채 한가로운 옛 도시가 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