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유곽의 거리 선미촌에는 지금

그때 그 거리를 찾아가 보니

작성일 : 2023-01-10 22:15 수정일 : 2023-01-11 09:32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전주 시청이 들어서 있는 기린로.

거기에는 삼성과 대우 빌딩도 자리 잡고 있는 번화가이다.

그러나 큰길을 건너가면 딴 세상이 나온다.

 

이곳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주 유곽의 거리였다. 선미촌이라 불렀던 이곳에는 벽이 온통 유리벽이어서 안이 환히 들여다보였다. 밤이면 붉은 불빛을 밝히고 사내들을 사냥하는 미녀 사냥꾼들이 득실대던 곳이었다. 그들을 유리벽 속의 공주라 불렀다.

 

사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호기를 부렸던 사람치고 이곳을 한 번도 거쳐 가지 않은 사람은 많지 않았으리라.

술이 웬수라고 술 취하면 객기를 부려 ‘우리 둑 너머에 한 번 가보자’ 누군가가 소리치면 ‘그까짓 것 뭐 대수냐? 사내가 거기도 못 가보면 사내가 아니지’ 어쩌고 하면서 발길을 이쪽으로 돌렸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곳은 가까이 가기만 하면 되었다. 늘씬 날씬한 사내 사냥꾼 아가씨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낚아채 갔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몰라도 되었다. 돈만 내면 되니까. 호주머니 돈이 술값으로 나갔는지 화대로 나갔는지 아리송한 가운데 집에 돌아가 다음날 보면 호주머니가 온통 비어 있는 빈털터리가 되어 있었다.

 

 그때의 붉은 불 켜져 있던 유리벽이 그대로 남아 있는 노송동 선미촌 골목

 

전주의 홍등가의 역사는 일본인들이 전주성을 헐고 성안으로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일본에서는 국가에서 인정한 공창(公娼)이 버젓이 존재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객지에서 혼자 생활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만들었던 것이다. 그들이 우리나라로 건너오자 전주에도 서문 근방에 공창을 만들었다. 후에 진북동으로 옮겨 갔는데 해방 후 미 군정청의 공창 금지령에 따라 사라졌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미군을 상대로 시작된 양공주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사창의 규모가 커지면서 사창가로 변모한 것이다. 전주에는 시청 맞은편 서노송동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지금 둘러본 선미촌은 그때 그 집들이 그대로 남아 있다. 온통 유리벽이어서 안이 환히 들여다보이는 방들이 낮은 지붕 아래 옹기종기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고만고만한 집들이 주욱 늘어서 있다. 이 골목 저 골목 참 많기도 하다. 찬바람만 부는 이 허술한 곳에서 휘황찬란하게 불을 밝히고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었던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유리벽 속의 공주들이 있던 유리창 집

 

그곳으로 흘러들어 갔던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기구하고 한 많은 사연들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고급 호텔에서부터 고급 요리점, 술집을 거쳐 나이 들어 마지막으로 흘러들어 가기도 하고 시골에서 돈을 벌겠다고 무작정 도시로 나왔다가 못된 사람들의 꼬임에 빠져 들어가기도 하였다. 또 갈 곳이 없어 그곳으로 가기도 하였다.

첫사랑 그놈에게 배신당하고 홧김에 그곳으로 간 사람들도 있었다. 그 이야기를 그놈이 알았다면 두고두고 가슴 아프게 살아갈 것이었다.

한 번 그곳에 들어서면 돈을 벌기는커녕 빚에 얽히고 감시에 갇혀서 꼼짝도 못 하는 신세가 된 사람들이었다.

 

사내들이 그때의 일을 한때의 추억으로 술안주 삼아 씹고 있을 때 거기에서 기거하던 여인들은 부끄러운 과거를 행여 다른 사람들이 알세라 말도 못하고 지금 어디에서 가슴 시리게 살아가고 있을까?

 

기린로에서 선미촌으로 들어서는 초입에 간판이 하나 있고 거기에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선미촌은 60년째 이어지고 있는 성매매 집결지이다. 일제 강점기 유곽으로 시작하여 해방 이후 미군 위안소로 변모했다가 지금과 같은 유리방 형태의 집결지로 변모했다. 2013년부터 선미촌 정비 민관협의회 활동으로 ‘여성 인권과 예술의 거리’로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그리고 공원의 벤치가 그려진 그림과 함께 이런 글도 쓰여 있다.

“나는 여기가 공원이 생겼으면 좋겠어. 지금은 손님을 기다리며 앉아 있는 의자이지만 그때는 친구와 산책하다 잠시 쉬어가는 의자이면 좋겠어.”

 

선미촌 한 복판의 어떤 집 뒷벽에는 이곳이 선미촌임을 알리는 야릇한 대형 그림이 아직도 남아 있다.

전주시에서는 이곳을 예술촌으로 조성할 예정이라고 한다. 골목 한쪽에는 “서노송 예술촌”이라는 안내판이 서 있기도 하다.

 

이곳이 예술촌으로 조성되면 옛 생각하며 다시 찾아올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옛날에는 이런 곳이었다는 얘기를 들으러 올 사람들도 있으리라. 그러나 다시는 찾아오고 싶지 않은 가슴 아픈 사람들도 있으리라. 그들의 마음들을 다 보듬어 위로해 줄 참으로 좋은 방법은 어디에 있을꼬?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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