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쑥고개와 임실 삼계 쑥고개

마을 이름이 쑥고개인 특이한 마을

작성일 : 2023-01-12 13:05 수정일 : 2023-01-12 14:26 작성자 : 이용만 기자

 

 

 

길 중에서 산이나 언덕의 비탈진 곳을 고개라 한다.

길을 가다가 고개를 만나면 힘들다. 구불구불 길이 멀어지기 때문이다. 또 비탈이져서 힘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개는 한숨과 눈물의 고개가 되기도 하고 한맺힌 고개가 되기도 한다.

 

고개 중에 쑥고개가 있다.

쑥고개는 쑥과 관련이 있는가? 전국에 있는 쑥고개 어디에도 쑥과 관련이 있지는 않다.

 

전주에도 쑥고개가 있다.

서부지역인 효자동 삼천이 흐르고 있는 우림교에서부터 정읍 쪽으로 가는 완산구 용복동 마산 1교까지 이어지는 길이 쑥고개로다. 이 길은 우전초등학교 앞을 지나 전북교육청과 국립전주박물관을 지나서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결코 높은 고개는 아니다. 그러나 새로 난 도로가 아닌 옛 쑥고개길을 가보면 고개는 고개임이 분명하다.

쑥고개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도 있고 남원 주천면에도 있다.

그런데 고개가 아닌데 마을 이름이 쑥고개인 동네가 있다.

어떻게 고개가 아닌 마을 이름을 쑥고개라 불렀을까? 높은 고개 위에 있는 동네인가? 그렇지도 않다. 삼계면에서는 꽤나 넓은 들판을 가지고 있는 평지에 있는 동네다. 임실군 삼계면 봉현리에 있는 쑥고개 마을이 그곳이다.

 

쑥고개 마을의 본래의 이름은 숙호(宿虎)다. 잠잘 숙(宿) 자에 범 호(虎) 자다. 호랑이가 잠을 자고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마을 뒷산의 형태가 호랑이가 누워서 잠을 자고 있는 형태이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 숙호인 것이다. 마을 뒤에는 제법 높은 산인427m의 감은산(甘隱山)이 있다. 산속에 달고 시원한 감로수(甘露水)가 숨겨져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그 산에 가서 보면 숙호 마을의 뒷산이 호랑이가 누워 있는 형상이 뚜렷하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마을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 호랑이의 품이 아니라 호랑이가 누워있는 등 쪽이다.

그런데 숙호라는 말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 보니 쑥고개가 되어버린 것이다.

 

잠자는 호랑이 형태를 볼 수 있는 마을 뒷산인 감은산

 

일제강점기 때에 우리말을 한자어로 바꿀 때에 발음 그대로 쑥 봉(蓬) 자에 고개 현(峴) 자를 써서 봉현리(蓬峴里)가 되어버렸다. 그야말로 쑥고개인 것이다.

행정구역상 봉현리를 쑥고개 마을과 사오래 마을로 나누어 부른다.

전라북도 임실군 삼계면 봉현리는 이렇게 하여 만들어진 주소가 되었다. 그러므로 봉현리 쑥고개 마을은 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고개와도 관련이 없다.

 

그런데 마을 이름이 쑥고개이니 쑥이 많이 나느냐고 묻기도 하고 쑥고개가 어디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들이 알아서 동네 동쪽에 있는 황정지 고개를 쑥고개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찌 보면 마을 동쪽에 있는 황정지 고개는 쑥고개라 불러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지금은 고개를 피하여 마을 앞에 난 도로를 따라 후천 쪽으로 다니지만 전에는 황정지 고개를 넘어 면소재지인 삼계도 가고 장이 서는 오수에도 다녀왔다.

 

황정지 고개를 넘어가면 자동차가 다니는 신작로가 나왔다. 그 길을 따라가면 삼계 면소재지도 나오고 기차가 다닌다는 오수도 나왔다. 오수에서 기차를 타면 전주에도 가고 서울에도 간다고 하였다.

이 고개를 넘어 많은 사람들이 전주나 서울을 향하여 마을을 떠나갔다. 그들은 부자가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고개를 넘어갔다. 울면서 가는 사람도 있었다.

 

황정지 고개는 우리 동네 쑥고개 사람들의 아리랑 고개였다. 고향을 떠나면서 고개 위에 올라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정들었던 고향을 떠나면서 기어이 성공하여 돌아오리라 각오를 다졌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으리라 독한 마음을 품고 가기도 하였으리라. 고개를 넘어 시집을 가는 아낙네는 눈물도 많이 흘렸으리라. 그래서 황정지 고개는 쑥고개가 되었고 아리랑 고개가 되었다.

 

황정지 고개인 쑥고개를 넘어 전주로 서울로 혹은 부산으로 고향을 떠난 사람들은 대부분이 추석이나 설 명절이면 멋진 옷을 입고 자동차를 몰고 나타났다. 모두가 성공한 사람들로 보여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따라나서기도 하였다. 사실은 어렵게 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돈을 모아 그때에 광을 냈는데 남아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모두가 성공한 사람들로 보였던 것이다.

 

임실군 삼계면 봉현리에 있는 쑥고개 마을은 우리 동네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내 고향이다. 지금도 내가 살던 집터가 있고 논도 있고 밭도 조금 남아 있다. 아버지 어머니가 쑥고개인 황정지 고갯마루에 누워계신다.

 

나의 글 가운데 쑥고개가 등장하고 황정지 고개가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황정지 고개 너머에 우리 밭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황정지 고개를 넘어 밭을 다녔다. 밭에 가면 어머니가 있었고 오이, 가지, 참외 등 주념부리 할 거리가 많았다.

 

전주의 쑥고개와 임실 삼계의 쑥고개.

두 고개는 서로 관련이 없다. 그런데도 전주의 쑥고개를 지나갈 때에는 그 이름만으로도 내 고향처럼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이용만 기자 ym60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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