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죽 물을 대어주던 자리에 교육기관이 수두룩 들어서
상전벽해(桑田碧海)는 뽕나무밭이 바다가 되듯이 변화가 심한 경우에 쓰는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럴 만큼 변화가 심하다는 비유인 것이다.
그런데 벽해상전(碧海桑田)은 있다. 우리나라 서해안에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바다를 막아 농토로 개발한 지역이 여러 곳 있다.
최근 세계적으로 가장 긴 방조제를 가진 벽해상전(碧海桑田)이 우리나라에서 있었다. 바로 새만금 사업이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도 벽해상전(碧海桑田)이라는 말을 쓸 수 있을까?
전주시 인후동에 있었던 방죽 자리에 학교와 아파트가 들어선 경우다. 이곳이 바로 심방죽 자리다.
심방죽은 모래내 시장을 지나 안덕원으로 가는 길에서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돌려 동중학교 쪽으로 가는 심방죽길의 초입에 있는 지점에 있던 방죽을 말한다. 지금 인후 선변 아파트가 들어서 있는 지점이다.

심방죽 자리에 들어선 인후 선변아파트
심방죽은 심 씨(沈氏)들이 농사를 짓기 위하여 파놓은 방죽의 이름이었다. 인후공원인 도당산 골짜기에서 흘러온 물을 이곳에서 가두어 방죽을 만든 것이다.
때는 일제강점기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심방죽이 있던 자리는 지금 선변아파트가 들어선 자리와 전라초등학교와 동중학교가 들어서 있는 교차로 부근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심방죽이 있었고 이곳의 물을 부근의 논에 공급했는데 논이 있던 자리는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 자리와 전북 교육연구정보원이 서 있는 자리, 그리고 전주여고와 완주교육청과 동북초등학교가 들어서 있는 자리를 포함하며 모래내 시장까지를 포함한다.
심방죽은 밀가루방죽이라고도 불렀다. 해방 후 미군청청에서 방죽을 메워 농지로 만들 때에 품삯을 밀가루로 주었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었다.
해방이 되고 1948년 정부가 수립되자 창설된 국군보안사령부의 국군정보국 소속 육군 특무대가 만들어졌다. 후에 방첩대로 불렀으며 군사정권이 장기화되면서 민간인을 사찰하기 위하여 이름을 보안대로 바꾸었는데 그 보안대가 바로 심방죽 자리에 있었다.
필자가 중‧고등학교 시절에 이곳은 높은 시멘트 담 위에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는 접근금지 구역이었다.
고등학교 선배 한 사람이 군대에 입대하여 심방죽이 있던 이곳 보안대에 근무를 하였는데 자주 하는 말이 ‘너희들 멋모르고 까불다가 이곳에 잡혀 들어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저 세상으로 가는 수가 있으니 조심하거라 잉. 교통사고라고 하면 그것으로 수사 종결이니까 입 함부로 놀리면 안 된단 말이다’ 하면서 주의를 주었던 말이 생각난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보안대는 전주의 서쪽 이서로 옮겨가고 공터가 되었다. 그러다가 2003년 3월에 선변 아파트 두 동이 건축되어 221세대가 입주를 하게 되었다. 필자도 이곳 선변아파트에서 살았는데 참 살기 좋은 곳이었다.
이곳 주변이 심방죽길 주소를 가진 지역인데 동중학교 뒤편 부근의 마을과 전라초등학교 뒤편에서부터 위브어울림 아파트 후문에 이르는 아리랑 고개 정상까지의 마을이 심방죽로에 해당하는 마을이다.

심방죽로의 이름을 가진 전라초등학교 뒷골목
이곳은 한 때 전주시 해피하우스 대상 지역에 선정되어 주민 참여를 통한 주거환경 개선 사업을 벌였던 지역이기도 하다. 골목길을 환하게 도색을 하고 공동 꽃밭과 텃밭을 조성하며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던 지역이다.
그러고 보니 그때 심방죽에 물을 가두어 물을 대주던 논밭의 대부분 지역이 지금 나라의 일꾼을 길러내는 교육기관이 들어서 있는 것은 심 씨들이 만들어 놓은 심방죽 물줄기의 후광을 입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