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 셋을 키우면 도에 이른다.”
예로부터 어른들에게 들었던 말이다.
“자식 셋을 키우면 죽어서 사리가 나온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자식 키우기가 어렵다는 말인데 그렇다고 (道)라는 것이 그 정도로써 도달할 수가 있는 것이란 말인가?
도(道)라고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노자(老子)다. 노자 하면 생각나는 것이 그의 유일한 저서인 도덕경(道德經)이다. 도덕경은 만고의 명저로 지금도 해석을 다 못하고 있다.
도덕경의 첫 구절이 ‘도가도 비상도(道可道非常道)’다. 도를 도라 말할 때에는 이미 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말 어려운 말이다. 그다음 말은 더 혼란스럽게 한다. 명가명 비상명(名可名非常名)이다. 어떤 물건을 이름을 붙여 부를 때에는 이미 그것은 그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두고두고 생각해 보아도 어려운 도에 대한 깨달음인데 남자들만큼 공부도 하지 못한 여인이 아이 셋을 낳으면 도를 깨우친다는 것이다. 이런 희귀한 일이 있을까? 내가 여자라면 당장 아이 셋을 낳아보고 싶은 충동을 받는다.
그런데 ‘여자’를 ‘어머니’로 바꾸어 보면 달라진다.
어머니의 마음을 대입시켜 보면 수긍이 간다.
도(道)란 한 마디로 말하면 ‘어머니의 마음’인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은 무엇인가? 오로지 자식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내놓는 것이다. 즉, ‘나를 버리는 것’이다.
나를 버리는 것- 그것이 도(道)인 것이다.
이것을 깨닫기 위하여 자식을 낳아보지 못한 남자들은 6년이나 히말라야 산속에 들어가 수행을 한 사람도 있고 40일이나 광야에 가서 마귀의 시험에 시달리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도를 깨우치기 위하여 9년 동안을 벽만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가족들을 다 버리고 머리를 깎고 산속으로 달아나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은 가족들을 떠나 머리에 천을 둘러쓰고 수도원으로 들어가기도 하였다. 그리고 깨달은 것이 결국은 어머니의 마음인 ‘나를 버리는 것’이었다.
세상에서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 중에 내 자식이 있다. 세상 사람들을 다 가르쳐도 내 자식만은 내 마음대로 가르칠 수 없다는 사람도 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내로라는 유명 인사의 자식이 사람들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사람도 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을 선택할 수만 있다면 가족 되고 싶지 않은 사람 많이 있다. 어쩌다 저 아이가 내 자식이 되었는가 원망스럽기도 하고 왜 나를 낳으셨나요 한탄을 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자식이 있고 부모가 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지금의 어머니 아버지가 아니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부모 중 한 사람만 바꾸어져도 내가 아닌 다른 아이가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부모가 아닌 더 좋은 부모 밑에는 내가 아닌 다른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고우나 미우나 내 부모요 내 자식임은 천륜이다.
자식 셋을 키우면 도(道)에 달한다는 말이 그냥 생긴 말이 아님을 명심하고 자녀들은 부모에게 효도를 다 해야 할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쏟은 정성만큼 부모에게 효도하면 자식도 도(道)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