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람하게 솟아 있는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 기념탑
도시 복판에 있는 농촌 학교인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는 대지가 339,946제곱미터로 보통학교의 10배에 해당되는 넓은 터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다 각종 농업 실습지와 농기계가 여기저기 있어 전형적인 농촌 냄새가 나는 학교다.
전주 농고라 불리는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는 1910년 개교한 이래 112년의 역사를 지내오면서 한때는 전북의 인재들이 모여들던 엘리트 학교이기도 했다.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 정원에는 우람한 100주년 기념탑이 서 있다.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는 1910년 6월 1일 공립 전주농림학교로 농업과 학생 30명으로 출발을 했다.
그 후 1951년부터는 전주 농림고등학교로 개명하였다. 1965년에는 전주동중학교와 분리하였고 2006년에는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로 교명이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주농고가 이름을 전국적으로 떨친 것은 박주봉 선수가 세계 배드민턴대회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면서부터다. 같이 활동했던 김경문, 하태권 선수들이 학교 이름을 드높였다.
농업이 국가의 주산업이었던 초창기의 전주농고는 전북의 우수한 인재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그들이 정계와 재계로 진출하여 전북의 요직에서 활동을 했다. 그래서 막강한 힘을 가진 학교였다. 1970년 초기에는 이들이 교사로 진출하여 교육계를 수놓기도 하였다.
개교 100년이 되던 2010년에는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렸고 이때에 세워진 탑이 개교 100주년 기념탑이다. 웅장하게 솟아 있는 기념탑은 수많은 동창들이 참여를 하였는데 예비 동창인 재학생들도 성금을 보탰다.

“청년의 꿈, 천년의 기상(氣相)”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 기념탑은 위가 뾰족한 자연석인데 그 크기와 규모가 웅장하다.
총액 4억 1,595만 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이 기념탑은 21회 졸업생부터 행사당일 3천 명에게 식사를 제공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수백 명의 이름이 쓰여 있고 재학생들도 265만 원의 성금을 보탰다. 지역별 모금 내력과 직장별 동문친목회에서 후원한 내력도 있다. 돈이 아닌 식물학 도서를 기증한 사람도 있고 준비 기간 중 내내 수고한 임원들에게 식사를 제공한 사람도 있다.

기념탑 이면에는 42회 졸업생 전병윤 시인의 시가 새겨져 있다.
세기의 금자탑
백의민족 삶을 추스렸던
전주농림고교 농자들의 높은 기상
농업의 새 씨앗 뿌리고 가꾸며
한 세기 동안 쌓은 금자탑
영원히, 영원히 빛나리
맹초같이 용감한 기상으로
황소같이 꾸준한 인내로
자원의 터전 가꾸어 갈 생명과학고
유구한 역사 속에 빛나리
생명과학 기수들이여!
온 누리에 녹색자원 꽃 피워라
햇빛이여 달빛이여! 여기,
전주생명과학고에 비추어라!
시인 42회 전병윤
기념탑 아래에는 개교 100주년 기념탑 건립추진 위원회 명단과 건립취지문이 있다.
건립취지문
1910년 3월 5일, 한국실업학교령에 의해 공립 전주 농림학교 설립 인가를 얻어 그해 6월 1일 30명이 입학하여 개교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는 등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모교는 굳건하였고 한국전쟁 때에는 선배들이 학도병으로 자진 입대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헌신하였다 이러한 역사 속에서도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인재육성의 산실로서 사명을 다하여 온 모교가 개교 100주년을 맞이하였다. 온누리에 꿈을 피운 2만 3천여 동문은 모교에 대한 사랑과 영원한 발전을 기원하며 동문의 화합을 염원하는 뜻을 모아 이탑을 세운다.
2010년 6월 1일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 총동창회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 추진위원회
대대로 이어온 농업 국가에서 국민의 생명줄이었던 농산물을 보다 효율적으로 생산해 내기 위하여 필요한 인재를 길러내었던 전주생명과학고등학교는 웅장한 개교 100주년 기념탑에 새겨진 “청년의 꿈, 천년의 기상(氣相)”을 실천해 나가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히 이 땅을 가꾸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