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상처를 안고 서 있는 전주시 삼천동 곰솔나무
전주역을 출발한 백제로가 전주의 중심을 지나 서부 지역을 돌아 거의 끝나가는 삼천동 사거리에 이르면 커다란 상처를 안고 서 있는 소나무 한 그루를 만날 수 있다.
몸통을 온통 시멘트 몰골로 때우고 16개의 가지를 벋으며 웅장하게 서 있던 옛 모습은 어디로 가고 겨우 4개의 가지만으로 살아 있는 삼천동 곰솔나무.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덩어리로 아프게 한다.
생각이 옹졸하고 치사한 어떤 사람이 곰솔나무가 서 있는 지점이 공원으로 조성된다는 말을 듣고 부근의 땅값이 떨어질까 염려되어 곰솔나무만 없어지면 공원도 없어지리라는 생각으로 나무에 드릴로 구멍을 뚫어 독극물을 투입하여 나무가 죽어가는 것을 겨우 목숨만 살려 놓은 형상이란다.

몸통이 온통 시멘트 철골로 버티고 있는 삼천동 곰솔나무
그런 사람도 우리나라 국민이고 전주 시민이다.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이다. 하긴 술 먹고 제 홧김에 국보 1호인 숭례문에 불을 질러 홀랑 태워버린 사람도 있다.
전날 퇴근할 때 보았던 숭례문이 다음 날 출근길에 보이지 않았던 그 황당함을 어떻게 표현할까. 귀신이 곡할 일이란 말로는 표현이 되지 않는다.
삼천동 곰솔나무가 서있는 지역은 인동 장 씨(仁同張氏) 장령공파 선산이었다. 현재 서 있는 곰솔나무는 조선 시대에 장범(張範)의 아들 장강(張綱)이 선산 조경을 위해 심은 나무였다. 그 후 후손들이 소중히 가꾸어와 그 위용이 웅장하여 곰솔나무로 불러지게 되었으며 1988년 천연기념물 제355호로 지정을 받았다.
1990년부터 이 지역이 안행지구 택지개발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이곳이 고립되어 수세가 약해지기 시작하였다.
1995년 이 지역이 공원으로 조성하게 되어 장씨 문중에서는 이곳에 있던 선영의 묘와 제각 등을 타지로 이전하게 되었다. 그때에 곰솔나무만은 그 자리에 그대로 두고 전주시에 기증을 하였다.

1900년대의 곰솔나무 옛 모습과 지금의 모습
곰솔나무는 소나무과에 속하는 사철 푸른 나무로 껍질이 흑갈색이다. 곰솔은 바닷가에 분포하기 때문에 해송(海松)이라고 부르며 껍질 색깔이 검다 하여 흑송(黑松)이라고도 한다. 흑송은 다른 소나무의 겨울눈이 붉은데 반하여 회백색인 것도 특징 중의 하나다.
삼천동 곰솔은 특이하게 내륙에 심어져 오랜 세월을 견뎌 왔으며 형태가 특이하여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곰솔나무의 크기는 높이가 12m이며 가슴높이의 나무 둘레가 9.62m이다. 동서의 길이가 24.5m, 남북의 길이가 29m에 이르는 웅장한 나무다. 이 곰솔은 지상으로부터 2~3.5m 지점에서부터 굵은 가지 16개가 사방으로 펼쳐져 마치 학이 공중으로 나는 모습을 갖추어 아름다움과 신비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독극물의 피해를 입어 현재는 4개의 가지만 살아 있는 실정이다.
그 후 옆에 작은 곰솔나무를 몇 그루 심어서 현재 상당히 크게 자라고 있다.

앞에서 바라본 곰솔나무와 좌측의 새끼 곰솔나무
곰솔나무 주위를 한 바퀴 돌고 나면 몸통인 시멘트 철골에 붙어서 몇 개의 받침대에 의지하고 있는 처량한 모습이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인간의 사소한 욕심이 얼마나 큰 죄를 짓는지를 보여주는 예라 할 것이다.
한 번 생긴 상처는 날씨가 추울 때는 더 쓰리고 아프다. 올겨울도 삼천동 곰솔나무는 수백 년 동안 전주 서부를 지켜온 이야기 속에서 큰 상처를 안은 채 말없이 추위를 견뎌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