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여자들의 앞길을 철저히 막아놓았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여자들이 어느 정도는 자유로웠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서는 여자는 인간이 아닌 오로지 남자들의 수종자로서만 살아야 했다.
허난설헌이 한탄한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태어난 것,
둘째는 남자로 태어나지 못하고 여자로 태어난 것,
셋째는 속 트이고 대범한 남편을 만나지 못한 것이었다.
그는 결국 자기 소질을 제대로 펴보지 못하고 스물일곱 살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검녀(劍女)가 있었다는 것이다.
칼을 차고 다니며 악당들을 물리치는 검객은 모두가 남자였다. 여자 검객은 만화에서나 나오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검녀(劍女)가 있었고 그가 익산에서 살았다는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검객의 한 장면
검녀는 어느 대갓집의 여종이었다.
어느 날 그가 의탁하고 있는 주인집이 어느 세도가에 의하여 하루아침에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게 되었다. 그는 가까스로 주인집 아가씨를 이끌고 죽음의 순간에서 벗어나 목숨을 건지게 되었다.
사방을 떠돌던 그들은 검객을 만나 어느 산속에 들어가 무술을 연마하게 되었다. 십여 년 동안 무술을 연마한 후에 그들은 높은 경지의 여검객이 되었다.
검녀와 주인 아가씨는 전국을 떠돌며 검술 공연을 하면서 원수를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한양에 도착하여 공연을 하던 중 가족을 멸망케 한 원수가 한양에서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마침 원수의 집에서 잔치가 벌어지게 되어 공연을 해주겠다고 하면서 칼춤을 추게 되었는데 실제로 원수와 그의 가족들을 살해하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원수의 일가족을 멸한 후 주인 아가씨가 말했다.
“이제 나는 원수를 갚았으니 할 일을 다 했다. 양가집 딸로서 살인을 했으니 어떻게 사대부에게 시집을 갈 수 있겠느냐? 그러나 너는 종의 몸이었으니 절의를 지킬 필요는 없다. 내 보검을 너에게 줄 테니 이것을 팔아 좋은 남자에게 시집을 가서 잘 살도록 하여라.”

만화에나오는 검객
아가씨는 부모의 산소 앞에서 제사를 드린 후 보검을 주고 목숨을 끊었다. 아가씨를 장사 지내주고 난 검녀는 자기의 몸을 맡길 장부다운 남자를 찾아 나섰다.
그러다가 익산에 살고 있는 진사 소응천이 지조가 높고 영웅다운 풍모를 갖추었다는 말을 듣고 그에게 가서 첩으로 삼아 달라 하였다.
3년이 지났다. 그런데 소응천은 소문만 그랬지 영웅다운 기개도 없고 지조도 없었다. 검녀는 소응천 곁을 떠나기로 마음먹고 지금까지 숨겨왔던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마지막으로 검술을 선보였다.
검녀가 외마디 기압을 넣자 몸이 하늘 높이 솟구치더니 하늘을 빙빙 돌면서 칼을 휘둘렀다. 마치 매화 꽃잎이 사방으로 흩어지듯 하더니 뜰에 있는 나무들이 우수수 베어져 쓰러지고 휙휙 사람이 날아다니는데 허공이 푸른 섬광으로 가득 찼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번쩍이는 칼빛만 동서남북으로 돌아다녔다. 하늘이 싸늘하게 얼어붙고 허공에는 푸른빛이 가득하였다.
소응천은 벌벌 떨다가 끝내 기절하고 말았다.
다음 날 새벽 검녀는 소응천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남복을 하고 떠났다. 그 후 검녀의 소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익산에서 떠나갈 곳이라면 지리산이나 강원도 태백산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실제의 이야기가 아니고 조선 후기의 학자 안석경(1718~1774)이 한문소설로 엮은 삽교만록(霅橋漫錄)에 나오는 이야기라 한다.
그래도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여자 검객을 등장시켰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안석경만 그런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은 아니다. 임매(任邁)라는 사람도 잡기고담(雜記古談)에서 칼을 휘두르는 여자 검객으로 자매를 등장시키는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
이러한 이야기는 전혀 근거가 없는 이야기는 아니고 무언가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을 것이라는 풍문이 있다. 갑갑했던 조선의 여자들에게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을 불어주는 검녀의 이야기는 그래서 한 번쯤 들어볼 만한 이야기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