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련산(可連山)은 가련한 산인가?
맞는 말이다. 가련산은 주봉인 건지산에서 끊어질 듯 이어질 듯 겨우 이어져간 가련한 산이다. 산이 높지도 않고 넓지도 않으며 별다른 특징도 없어 아무에게도 주목을 받지 못하는 산이다. 산 높이가 해발 106m에 불과하여 정상에 올라가도 볼만한 풍경이 없고 산책을 하기에도 길이 너무 짧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산 정상에 웅장한 탑이 하나 서있다는 것이다.
순국학도현충비 (殉國學徒顯忠碑)가 그것이다.
여기에는 한국전쟁 때 학도병으로 나가 장렬히 산화한 509위의 영령들을 달래주는 현충탑이 서 있다. 산이 약하고 가련하여 이를 달래주려는 듯 현충탑은 웅장하다. 고개를 높이 쳐들고 쳐다보아야 보인다.

가련산 정상에 세워진 순국 학생 현충탑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많은 학생들이 학도병에 지원하며 전선으로 달려갔다. 전주 시내 38개 학교에서 2천여 명이 학도병으로 나갔다. 그들은 학생복을 입은 채 1950년 7월 13일에 전주역에서 기차를 타고 남쪽을 향하여 달려갔다. 그것이 그들을 본 마지막이었다. 대부분의 학도병들은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제대로 입거나 먹지도 못한 채 전선으로 배치되어 갔고 거기에서 죽었다.
530여 명이 전사했는데 신원이 밝혀진 509위의 영령들을 이곳에 안치했다. 지금도 매년 가을이면 이곳에서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그들은 학생 신분이었기 때문에 자손들도 없이 쓸쓸히 이곳에 잠들어 있다.

순국학도 현충탑에 대한 안내비
그래도 가련산은 오랫동안 전주의 북방을 지켜온 산이다. 가련산은 전주시사에 ‘맑게 갠 하늘 아래 만경창파로 떠나는 배의 형상’을 지닌 산이라 표현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건지산과 가련산 사이에 나무와 언덕이 없어 기가 허하다’고 했다. 그래서 전주의 땅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으려고 둑을 쌓아 덕진연못을 만들었다.
건지산과 가련산을 가련하게 이어가던 산줄기는 현대화의 기류에 밀려 시가지가 확장되면서 맥이 끊어졌고 가련산마저 하가지구 도로가 개설되면서 두 동강이를 내어버렸다. 가련한 가련산이 더 가련하게 되어버린 것이다.
가련산 아래를 휘돌며 좁은 길을 따라가다가 자리 잡은 학교가 덕진중학교다. 다른 학교들은 처음에는 변두리에 자리를 잡아도 학교가 들어선 후에는 시가지가 형성되어 번화가가 되기도 하였다. 그중 하나가 전주한일고등학교와 전주중앙여자고등학교다. 그런데 가련산 아래 자리 잡은 덕진중학교는 예나 지금이나 한적하고 외진 곳이 되어 쓸쓸하기까지 하다.
가련산을 중심으로 위쪽을 윗가르내, 아래쪽을 아랫가르내라고 불렀다. 그것을 한자말로 고치면서 상가리와 하가리가 된 것이다. 가련산 서북쪽 상가리에서 구 법원 쪽으로 가는 산 아래를 강정모퉁이라 불렀고 그중 구 전주법원이 자리 잡았던 곳은 자라가 목을 길게 빼고 있는 자라코빼기였다. 사평 마을 앞을 사평들이라 불렀는데 떡전 마을이 있었다. 서울로 가는 사람들이 숲정이를 지나 이곳을 지나가게 되는데 이곳에서 떡을 팔았던 것이다.
가련산 자락 남쪽에는 전주기상대가 있다. 전주 기상대는 1918년 노송동 풍남초등학교 옆에 전주 측후소로 설립된 이래 오랫동안 거기 있다가 2013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 이곳으로 옮겨와서 전주 관측소에서 전주기상청으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가련산은 현재 가련산 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고 덕진동 주민들과 전주 시민들로 구성된 “가련산 지킴이”가 구성되어 활동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전주의 북쪽을 지켜왔던 가련산을 더 이상 가련하지 않도록 온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지키고 가꾸어 나가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