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개의 이름을 가진 순창 적성의 새로운 명소
최근 새로운 명소로 주목을 받고 있는 구름다리가 채계산(釵笄山) 출렁다리다.
채계산 출렁다리는 270m로 국내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가 되었으며 높기도 아주 높다. 541개의 계단을 밟고 300m 정도 올라가야 출렁다리에 이른다.
채계산 출렁다리는 강천산, 회문산, 용궐산과 더불어 순창을 대표하는 산인 채계산에 놓여진 다리다.
산이란 줄기가 이어지지 않고 끊어지면 이름이 바뀌는 법인데 채계산은 순창군 적성면 괴정리의 순창 채계산과 동계면 서호리의 남원 채계산으로 불리고 있다. 예전에는 동계가 남원부에 속해 남원 채계산이라 불러왔다. 채계산 출렁다리는 두 개의 채계산을 하나로 이어주는 역할을 한 것이다.

구름에 감싸인 채계산과 출렁다리
순창군 적성면에 있는 채계산(釵笄山)은 비녀 채(釵) 자에 비녀 계(笄 ) 자를 쓴 산이다. 비녀처럼 섬세하고 아름다운 산이라는 뜻이다. 달밤에 비녀를 곱게 지른 미녀가 누워 있는 형상이란다. 그래서 출렁다리 입구에 월하미녀(月下美女)라는 말이 크게 쓰여 있다.
“성! 성님 고향 삼계하고 순창 채계산하고 먼 곳이요?”
“별로 멀지 않은 가까운 곳이지.”
“그럼 도청에서 발간하는 ‘얼쑤 전북 2월호’ 한 번 보시오.”
“무슨 별난 것이라도 나왔는가?”
“좌우지간 한 번 보세요.”
나에게 늘 기사거리를 제공해 주는 ‘기사거리의 샘물’인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님 말이라 안 들을 수가 없다.
얼쑤 전북 2월호를 펼치니 ‘순창 채계산 금돼지굴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면 당장 사진 찍어다 기사를 만들어야겠다. 그런데 어차피 한 번 다녀온 곳을 다시 쫓아갈 일이 아니고 믿을만한 사람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라 해야겠다. 마침 채계산 출렁다리 안내원으로 있는 처남 양철호가 생각난다.
오늘 기사에 사용한 사진들은 처남인 양철호 씨가 보내준 사진이다.
채계산은 선녀가 비녀를 꽂고 누워있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또 다른 이름은 책여산(冊如山)이다. 책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형상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커다란 돌덩이가 백발노인 같다하여 화산(華山)이라고도 부른다. 또 있다. 적성면에 있으면서 적성강을 안고 있다하여 적성산(赤城山)이라고도 부른다. 그다지 크지도 않는 산이 네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도 채계산의 특징이다.
채계산은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산 정상인 송대(松臺)는 날아가는 새들도 이곳에 앉기를 꺼려할 만큼 위태로운 곳이다.
이 송대는 고려 말 최영 장군이 등장한다. 최영 장군이 이곳에서 활쏘기 수련을 했다는 것이다.
최영 장군은 장수군 산서면 마치대에서 활을 쏘아놓고 이곳 채계산에 와서 화살을 확인했는데 어느 날은 장군이 도착하고 난 후에도 화살이 보이지 않았다. 말이 늦게 달려서 화살이 지나가버린 줄 알았던 장군은 말의 목을 쳐버렸다. 그때에야 화살이 날아오는 것이었다. 말이 월등히 빨리 달려온 것이었다.
채계산에는 금돼지굴이 있다. 적성에 부임한 원님의 부인이 갑자기 없어지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이에 원님은 명주실을 꿴 바늘을 부인의 치마 끝에 꽂아두었다. 그리고 나졸들을 데리고 명주실을 따라 갔다. 명주실은 채계산으로 올라가더니 어떤 굴속으로 들어갔다. 실을 따라 들어가 보니 황금돼지가 부인 무릎을 베고 누워 있었다.
그때 부인이 기지를 발휘하여 황금돼지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황금돼지는 사슴 가죽이 가장 무섭다고 말하였다. 마침 장롱 열쇠 끈이 사슴가죽으로 되어 있었다. 몰래 부인에게 열쇠 끈을 넘겨주자 부인은 그것을 돼지 콧구멍 속에 넣었다. 그러자 돼지는 큰 소리를 내며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이러한 전설은 채계산에만 있는 게 아니고 우리나라 각지에 있다. 경주에서는 황금돼지에게 잡혀갔다 온 부인이 아기를 낳았는데 그 아기가 최치원이었다고 한다.
적성 원님의 부인도 적성 원이 서두르지 않았더라면 황금돼지로부터 순창을 빛낼 걸쭉한 인물이 태어나지 않았을까?
이곳에는 금돼지굴 말고 황굴이 있다. 이곳에는 과거를 준비하던 수백 명의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석양 노을 받은 채계산과 출렁다리
채계산에는 높이가 30m가 넘는 백발노인의 모습을 한 바위가 우뚝 서있다. 이 바위를 화산옹 바위라 부른다. 혹은 장군바위, 미륵바위, 메뚜기바위라고도 부른다. 이 바위는 이상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바위의 색깔이 희고 환하게 보이면 그해 풍년이 들고 검은 색깔이 되면 흉년이 든다고 한다. 바위 색깔이 파랗게 되면 유행병이 퍼지고 바위색깔이 붉은 색이 되면 전쟁이 나거나 난리가 난다고 한다.
말을 탄자는 화산옹 앞에서 말에서 내려야 하고 머리를 숙이고 지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이 다리가 부러지거나 말 탄 사람이 낙상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관가에서는 해마다 화산옹에게 제사를 드렸다.
어느 날 전라병사 김삼용이 오색찬란한 옷을 입고 말을 타고 화산옹 앞을 지나가려하자 수행하는 아장이 이를 말렸는데 그냥 지나갔다. 그러자 타고 가던 말이 갑자기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화가 난 김삼용이 칼을 들어 화산옹의 오른쪽 어깨를 내려쳐버렸다. 잘려나간 팔은 산을 굴러가 적성강에 빠졌다. 이로 인하여 화산옹의 영험은 나타나지 않게 되었고 천재지변이 일어나 적성현은 폐현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채계산을 끼고 흐르는 적성강은 채계산이라는 이름을 만들어낸 곳이다. 이곳 적성강에서 채계산을 바라보면 달밤에 비녀를 꽂은 미인이 누워있는 형상이 보인다 하여 채계산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채계산 아래를 휘돌아 흐르고 있는 적성강과 적성 들판
이 적성강은 중국 상인들이 배를 타고 와서 복흥의 도자기와 적성의 옥을 사가던 곳이다. 강물 위에 배를 띄워놓고 한량들이 동편제와 서편제를 번갈아 부르면서 풍류를 즐겼던 곳이다.
채계산은 높이가 342m에 불과하지만 주변 조망권이 아주 좋다. 멀리 호남정맥의 완주의 만덕산, 장수의 팔공산, 진안 마이산, 임실 백련산, 남원 교룡산, 광주 무등산도 보인다. 섬진강 물줄기가 산을 휘돌아 풍경을 돕고 있다.
무엇보다도 채계산은 필자가 청년 시절, 고향에서 4H활동을 할 때에 단원들이 나들이를 왔던 곳이다. 감회가 새롭다. 나는 이제 채계산의 화산옹처럼 백발이 되었는데 산은 여전히 옛 모습 그대로 굳건히 서 있다. 인생무상은 여기에서도 보이는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