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과 청웅을 깨우친 선각자
김영원이라는 사람은 임실 지역 근대화의 터를 닦은 사람이다. 특히 청웅 지역에서는 나라에 필요한 요인들을 많이 길러내어 조선 말기 이 지역의 근대화에 크게 공헌한 사람이다. 삼일만세운동과 관련하여 76명이라는 많은 인물들이 훈포상을 받은 것은 김영원 선생의 영향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그의 제자 중에는 삼일만세운동 때의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인 박준승이 있다. 김영원이 없었다면 박준승도 없었을 것이다.
임실군 청웅면은 오랜 옛날 삼한 시대부터 주요 관청이 있었던 유서 깊은 곳이다. 그 중 선거리는 깊은 골짜기에 자리 잡은 마을이지만 지식인들을 많이 길러낸 큰 마을이다.
“오늘은 임실의 주요 인물들을 길러낸 청웅의 김영원 선생의 생가를 찾아갑니다. 제가 청웅초등학교에 근무할 때 가정방문을 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먼 곳까지 가정방문을 했다니 고생이 많았겠네.”
“그래도 이곳은 임실의 큰 인물 김영원 선생의 출생지니까요. 보람 있는 발걸음이었지요.”
언제 어디에나 잘도 달려가는 그는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님.
삼요정(三樂亭)을 찾아갔을 때에 마침 김영원 선생의 증손자인 김창식 씨와 동생 민식 씨가 우리를 반겼다. 김창식 씨는 삼혁당 김영원 선생 추모회 대표를 맡고 있는 사람이다. 증조할아버지의 유적지를 찾아준데 대한 고마움으로 『독립유공자 삼혁당 김영원』 책을 선뜩 내어준다.

김영원 선생 증손자들을 위로하고 있는 천판욱 선생
그로부터 김영원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김영원 선생은 1853년 임실군 청웅면 선거리 감나무골인 시목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慶州)요, 자는 화경(化京)이며 호는 삼혁당(三革堂)이고 도호는 원암(源菴)이었다. 이름이 여러 개 있었는데 김영원 외에 두희, 병옥, 병원, 병희라고도 불렀다.
선생은 근면 성실하여 낮에는 농사일을 하면서 밤에는 독학으로 학문을 깨우치는 일을 하였다. 그야말로 주경야독의 표본이 된 것이다.
김영원 선생은 26세인 1878년에 세계문화유산인 태인의 무성서원 도내 장의를 역임하였고 이듬해에는 전라도 서원 도내 색장을 지냈다.
과거에 응시할 마음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때 당시의 과거시험이 뇌물과 매수로 얼룩져 있던 때라 이를 포기하고 1883년에 자신이 태어난 임실군 청웅면 선거리 감나무골인 시목동 선무봉 아래에 삼요정(三樂亭)을 건립하여 후학 양성에 힘썼다.

임실군 청웅면 선거리에 있는 김영원 선생이 세운 삼요정
삼요정(三樂亭)이란 산과 물이 수려하며, 학문을 연마하기 좋은 곳이고, 애국 정신을 고취하기 좋은 곳이라는 세 가지 뜻을 포함한 말이다.
선생은 1889년 동학에 입도하여 동학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전라도 삼례 교조신원 운동에 참가하였다. 이듬해에는 서울 복합 상소, 보은 집회에도 참가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임실 북접 접주로 참가하였으며 그해 8월에는 전봉준, 김개남, 손병희 등과 함께 공주 전투에 참가하였다. 그 후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후 회문산에 들어가 6년 동안을 은거하였다.
1900년 상운면 훈장을 지냈으며 1904년에는 운암 출신 최승우의 지원을 받아 전주에 창동학교를 창설하고 학감 교장에 취임하였다.
1906년에는 임실군 청웅면 양지리에 삼화학교(三和學校)를 세웠으며 1907년에는 천도교 임실, 순창 교구장을 지냈다.
1919년 천도교 중앙총부에서 민족대표 33인을 선발할 때 박준승과 양한묵을 추천하였다.
그는 임실로 내려와 삼일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경에 체포되어 옥중에서 고초를 겪다가 순국하였다. 그때가 1919년 8월 26일이었다.
삼요정은 일제에 의해 1921년 강제 철거되었다가 2002년에 복원되었으며 3003년에는 국가보훈처 현충시설로 지정되었다.
“국가 유공자 후손으로서 국가로부터 어떤 지원이라도 받고 있나요?”
“우리는 증손자라 아무런 지원도 받지 않고 있어요. 손자까지만 지원을 받고 증손부터는 지원도 없답니다.”
요즘 복지비를 펑펑 쓰는 시대인데 어찌 국가유공자 후손에게는 이리도 인색할까?
“이 삼요정 건물 관리하기도 힘드시겠군요.”
“건물이 국가보훈처 현충시설인데도 관리비라고 청소비 명목으로 십만 원 정도 나옵니다.”
국가유공자 후손들에 대한 국가의 지원은 참으로 인색하기 그지없다. 매국노들은 떵떵거리며 잘 사는데 애국자 후손은 이리도 힘들게 살게 하는 정책은 빨리 시정되어야 할 것이다.
천판욱 선생이 가만히 옷소매를 당긴다.
“형님, 제가 청웅초등학교에 근무할 때 이곳에 가정방문을 왔는데 김영원 선생의 후손 중에 뇌염에 걸려 학업을 제대로 못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뇌염은 못 먹고 허약한 아이들에게 많이 걸리는 병이었거든요.”
참으로 안타까운 이야기다. 가슴 아픈 이야기다.
삼요정이 서 있는 이곳의 풍경은 아름다운데 이곳에서 나라를 위하고 국민을 계도하기 위하여 몸 바쳤던 선각자의 삶과 후손들의 생활은 고달프기 그지없구나. 그들 덕분에 나라를 되찾고 경제 발전을 이루어 잘 살고 있는 후손의 입장에서 참으로 죄송하고 미안할 따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