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 인후동 인후공원 도당산 아래 유일여고 울타리 건너 골짜기에 천여 평 남짓한 밭이 있다. 본래 편백나무를 심어놓은 밭인데 키가 큰 망초가 가득히 자라서 편백나무는 보이지 않고 망초만 수북이 자라던 곳이다.
겨울이 되니 망초 줄기가 말라비틀어져 죽고 나니 풀 속에 들어 있던 편백나무가 조금 드러나 있는 상태다. 보아하니 주인이 낫으로 키 큰 망초 대를 잘라버린 것 같다.
그런데 유일하게 망초 대 하나가 넓은 밭 가운데 높이 솟아 하늘을 찌를 듯이 서 있다. 저 망초는 어찌 주인의 낫을 피했으며 모진 겨울바람에도 넘어지지 않고 저렇게 의젓하게 서 있을까?
필시 뿌리와 줄기가 튼튼했으리라. 그리고 운 좋게 주인의 낫질도 피했으리라. 나도 밭에서 일을 해보았지만 일이 끝나고 밭을 둘러볼 때에 저렇게 하나가 용케 남아 있으면 기어이 밭 가운데로 들어가서 자르지는 않는다.
“허허, 그 녀석 운 좋게 안 잘리고 서 있구나.”
하면서 그대로 둔다. 저 망초 대가 그렇게 살아남은 것일 게다.
참 장한 녀석이다. 그리고 운 좋은 녀석이다. 그 녀석에게 가까이 가서 바라보나 내 키보다 두 배쯤은 더 크다. 비록 일 년생 망초에 불과하지만 살아남아서 하늘 높이 서있는 것이 장하다.

일 년생 풀인 망초가 하늘 높이 솟아 태양에 닿을 듯이 서 있다
이 몸이 죽어가서 무엇이 될고 하니
봉래산 제일봉에 낙락장송 되었다가
백설이 만건곤할 제 독야청청하리라.
어찌 성삼문의 시에 나오는 낙락장송에 뒤지랴.
한갓 일 년생 풀로 태어나서 가을을 넘기고 겨울이 가고 다시 봄이 올 때까지 저렇게 정정하게 버티고 서있으니 장하고 대견하다.
저런 기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저런 지조 하나는 가지고 있어야 한다. 저런 고집도 하나는 있어야 한다.
망초여!
독야 꼿꼿한 망초여!
남들보다 꼿꼿이 살았으니 너의 삶이 결코 헛되지는 않았으리라.
죽은 후에도 저렇게 하늘을 향해 버티고 서 있으니 장하도다.
너의 기개 앞에 박수를 보낸다.
너의 몸뚱이가 언제 사글어들지 모르겠으나 그 때까지 너를 지켜보아 주리라.
오늘은 밭 가운데 홀로 서 있는 망초 대 하나가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고 나의 기개를 돌아보게 하였다.
아무리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려워도 저 망초처럼 꼿꼿이 서 있을 기개를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비록 작고 보잘것없어도 나만의 기개는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고맙구나, 망초여!
금년에도 튼실한 줄기 뽑아 올려 겨울 찬바람 불 때 이렇게 기개 좋게 서 있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