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동에서 남부시장까지의 운송 작전
일제 강점기 때의 전주의 독립운동은 다가동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에는 일찍이 선교사들이 와서 자리를 잡은 예수병원과 선교사가 살던 집들이 있었고 신흥학교와 기전학교가 있었다. 그리고 전주에서 최초로 세워진 서문교회가 있었으며 다가공원이 있었다.
전주에서는 다가동을 중심으로 개화 운동과 독립운동이 전개되었다. 따라서 기미년 독립만세 운동도 이곳을 중심으로 진행이 되었다. 특히 서문교회가 중심이 되었는데 독립선언서가 서문교회 김인전 목사에게 전달되었고 김인전 목사가 만세운동을 총괄 지휘했다. 태극기도 밤중에 몰래 만들어 준비를 했다.
전주에서 만세 운동이 일어난 것은 1919년 3월 13일이었다. 이날은 전주의 장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날을 기하여 독립만세 운동을 거행하기로 한 것이다. 문제는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어떻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남부시장까지 몰래 운반하느냐 하는 것이었다.
더욱이나 그 앞에 천도교에서 계획한 만세운동이 사전에 발각되어 실패로 끝난 후여서 감시가 심해지던 때였다.
3월 13일, 독립선언서와 태극기의 운반이 극비리에 진행이 되었다. 이러한 일을 맡아서 했던 사람들이 주로 신흥학교와 기전여학교 학생들이었으며 태극기를 일반인들에게 나누어 주던 일을 한 사람들도 그 학생들이었다.
감시가 삼엄했던 일본 경찰들의 눈을 피하여 어떻게 많은 태극기가 남부시장까지 운반이 되었을까?
이에는 007 첩보영화 못지않은 비밀 작전이 진행되었다. 그 방법은 채소를 가득 실은 수레 깊숙이 채소 가마니 속에 태극기를 감추어 남부시장까지 운반한 것이었다.
전주에서의 만세 운동은 풍남문 종루에서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미리 준비된 150여 명 정도가 시작을 했으나 주변 사람들이 합세함으로써 규모가 커졌다. 여기에는 신흥학교와 기전여학교 학생들, 그리고 서문교회 교인들이 주도하였다. 특히 서문교회 이거두리 성도는 남부시장의 거지들을 동원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이게 되었다.
남부시장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전주 시내를 돌며 만세운동이 번져갔고 4월까지도 이어졌다.

전주의 만세운동이 일어났던 당시의 남부시장
남부시장 만세운동 발상지에 대한 기념비가 남부시장 매곡교 옆에 세워져 있고 신흥중‧고등학교 도로변에는 3‧1운동 100주년 기념 승강장이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3‧1운동을 총괄 지휘했던 김인전 목사 기념비가 서문교회에 세워져 있다. 이 기념비는 본래 다가공원 입구에 세워져 있던 것을 서문교회로 옮겨온 것이다.

전주의 3‧1 만세 운동의 중심지였던 서문교회
또 최근에 예수병원 앞에 기독교 근대역사박물관이 개관을 하여 여기에도 3‧1 만세 운동에 대한 기록들을 볼 수 있다.
전라북도에서 전주보다 먼저 3‧1 운동이 일어났던 곳은 군산이다. 군산에서는 3월 5일에 3‧1 운동을 펼쳤는데 이는 한강 이남에서 제일 먼저 일어났던 곳이다. 군산이 이렇게 먼저 일어난 데는 선교사의 역할이 컸다.
군산뿐만 아니라 전국 최초로 초등학생들이 만세 운동을 일으켰던 임실의 오수도 3월 10일에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임실은 12곳에서 만세운동을 일으켜 다른 지역의 3~4차례에 비하여 월등하게 많은 만세운동이 일어나 전라도에서 가장 많은 3‧1 만세 운동을 펼친 곳이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인가.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을 국가 발전의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날에 말해도 될 것을 하필 오늘 말하는 것일까.
조금이라도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뻔뻔한 일본이기에 파트너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나만의 기분일까? 우리는 왜 이다지도 정의롭지 못한 민족을 이웃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3‧1절을 맞이하는 마음이 착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