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가면을 쓴 악인이 있었다.
어느 여인에게 반한 악인이 여인이 행복해지기를 원하기에 행복한 가면을 쓰고 여인에게 접근했다. 그에게 속은 여임은 행복한 가면을 쓴 사람의 행복한 얼굴을 보며 함께 행복해 했다. 오랜 동안 둘이는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
어느 날 여인은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여인의 친구가 여인에게 그의 신랑이 행복한 가면을 쓴 악인이라고 알려줬다. 그러면서 수면제를 먹여 잠재우고 가면을 벗겨보라고 하였다.
여인은 신랑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그가 깊이 잠든 사이에 가면을 벗겼다.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그런데 여기에서 생각지도 않은 반전이 일어난다. 가면 안의 얼굴은 악인의 얼굴이 아니라 가면과 똑같이 행복한 얼굴이었다.
가면을 쓰고 행복한 얼굴을 흉내를 내다보니 어느새 악인의 얼굴이 행복한 얼굴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행복도 연습하면 행복해지는 것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것은 학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도적으로 학습하고 연마한다는 것이다. 물론 다른 동물들도 기능을 연마하면 기능이 향상된다. 서커스의 동물들을 보면 놀랄만한 기능을 보인다. 그러나 동물들은 한계가 있다. 몸으로 나타나는 물리적인 기능에 그친다.

행복한 순간은 누구나 만들 수 있다
그럼 인간은 무엇이 다른가?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성격까지도 학습하고 수련하여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육체를 다스리는 것은 마음이라는 것이다. 그 마음을 수련하고 수양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라는 것이다. 종교인들은 마음 수양을 계속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세상 사람들이 종교인들의 행위를 비난하는 것은 종교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하지 말라는 것이다. 종교인들을 재는 잣대를 달리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보다 한 차원 높은 경지에 이르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인들은 그것을 각오하고 신앙생활을 하여야 한다.
종교인들은 마음 수련을 늘 염두에 두고 일거수일투족을 조심해야 한다. 그래야 일반 사람들과 다른 신앙인이 된다.
행복한 가면을 쓰자. 그러면 행복한 얼굴로 변한다.
다만 조건이 있다. 오랫동안 쓰고 있어야 한다. 연극배우처럼 잠깐 쓰고 있다가 벗으면 안 된다. 내 얼굴이 가면처럼 행복한 얼굴로 변할 때까지 쓰고 있어야 한다. 어쩌면 죽는 날까지 쓰고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해복해질 수 있다면 그게 낫지 않은가.

행복한 가면을 쓰면 행복한 얼굴로 변한다
어떤 사람들은 진실하게 살아야지 가식적으로 행복한 가면을 쓰고 살아서는 안 된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미 가면을 쓰고 살고 있다.
도덕과 예의라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하여 나의 행동을 제약하는 것이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가면을 쓴 것이다. 어차피 가면을 썼으니 행복한 가면도 쓰자는 것이다.
행복에 대해서는 이미 선각자들이 일러 주었다.
행복의 파랑새는 결코 멀리 있지 않다고. 바로 내 곁에 있다고. 다만 사람들이 그것을 모르고 먼 곳에서 찾으려고 한다고.
행복한 가면을 쓰고 행복을 연습하는 자, 그대는 행복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