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낙서는 문화인만이 할 수 있다.
마음껏 낙서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자유인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전주에 마음껏 낙서를 할 수 있는 곳이 있다.
덕진 공원 연못과 접하고 있는 “야호 맘껏 숲 놀이터”이다. 이곳에는 대형 칠판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백묵도 준비되어 있고 칠판지우개도 있다. 키가 작은 어린이부터 키가 큰 어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마음껏 낙서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마침 한 어린이가 낙서를 하고 있다. 그 옆에는 엄마가 있고 아빠도 있다. 가까이 가보니 그림을 그리고 있다. 뭘 그리느냐고 물어봤더니 꽃을 그리고 있단다. 자주 오느냐고 물었더니 오늘 처음이란다. 그러면서 자주 올 거란다.

전주 덕진 연못 주변의 자유 낙서판
자기가 한 낙서를 깨끗하게 지우고 가는 사람도 있고 그냥 두고 가는 사람도 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깨끗이 지우고 가는 것이 옳을 텐데 어차피 자유롭게 낙서할 수 있는 곳이니까 자기가 한 낙서를 그대로 두고 가는 것까지 자유롭게 하는 것도 또 다른 자유가 아닐까.
때로는 멋진 시구가 남아 있기도 하고 아름다운 그림이 남아 있기도 한다. 화가가 정성 들여 그려 놓은 그림보다. 솜씨 좋은 사람이 멋대로 휘둘러놓은 낙서 같은 그림이 멋지게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만화가 호감을 받는 것이다.
어느 날은 누군가가 휘둘러 써놓은 글귀가 내 마음을 사로잡아놓기도 한다.
“잘 살고 있니?”
지극히 평범하고 멋도 없는 그 글이 어째서 이렇게 가슴을 치는 것일까? 누가 누구에게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를 그 말이 나에게 깊이 다가오는 것이다. 잠시 떨어져 있는 사람을 향한 말인지. 오랫동안 소식이 끊긴 사람을 향한 말인지도 알 수 없는 글이다. 어쩌면 아주 멀리 가버려서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을 향하여 하는 말인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언제 어느 때 무슨 일로 하던 짓을 못할 때가 온다.”
나도 한 번 낙서를 해본다.
얼마 만에 해보는 낙서인가. 어쩌면 학창 시절에 해보고 까마득 잊고 있었던 낙서인 것 같다. 내가 낙서를 해본 지가 그렇게 오래되었나. 그만큼 감정이 메말라 있었다는 것 아닌가. 낙서는 한가할 때에 하는 것인데…
엊그제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 자주 만나는 사람이었고 만날 때마다 잘도 웃어주던 사람이었다. 관촌에 염소탕 잘하는 집이 있다면서 관촌에 올일 있으면 함께 염소탕 먹으러 가자고 하던 사람이었다. 틈 나면 가려니 했었는데 이제는 틈이 나도 소용이 없게 되어 버렸다. 함께 염소탕을 먹으러 갈 수도 없고 그런 말을 들을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낙서 끝에 한 줄 더 써본다.
“그 가운데는 숨 쉬는 일도 포함된다.”
언제 어느 때 무슨 일로 하던 일을 못할 때가 오는데 그 가운데 숨 쉬는 일도 포함이 된다고 써놓고 보니 괜찮은 말인 것 같아 그대로 지우지 않고 물러났다. 누군가가 낙서하러 왔다가 한 번 읽어보라고.
틈을 내어 덕진공원 연못과 접해 있는 "야호 맘껏 숲 놀이터"에 와서 자유 낙서판 앞에 서보기를 권장한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써보기를 권장한다. 까마득한 학창 시절까지 들춰내게 하는 낙서판 앞에 서서 그때에 하던 낙서를 다시 한 번 해보면 새로운 감화에 젖을 수 있을 것이다.
낙서를 시작하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꾹꾹 눌러두었던 말들이 튀어나올 것이다. 그리고 마음도 시원해질 것이다.
자유 낙서판 앞에서 잠시나마 나의 자유를 누려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