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록유산 조선왕조실록을 완벽하게 지켜온 전주사고

조선왕조실록을 지켜온 사람들

작성일 : 2023-03-16 07:52 수정일 : 2023-03-16 09:51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은 보물 중의 보물이다.

앞으로 그런 기록이 나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날 때쯤이면 자기들에게 불리한 기록들은 모조리 없애버린다. 심지어 파쇄기를 여러 대 들여다가 수도 없이 문서들을 파쇄시켜 버린다. 그래서 5‧18 때 누가 발포명령을 내렸는가를 수십 년이 흘러도 찾아낼 수가 없다. 조선왕조실록을 기록하던 사람들이 들으면 기절초풍을 할 일이다.

 

조선왕조실록은 총 1,893권, 888책이다. 책 이름은 『태조실록』, 『정종실록』 등으로 부르고 있다.

실록은 임금이 통치를 하는 당대에는 기록을 하지 않고 임금이 죽은 후 다음 왕이 즉위하면 편찬을 하였다.

최초의 기록은 태조가 죽은 후 1년이 지나서 태종이 하륜에게 명하여 『태조실록』을 편찬토록 하였다.

역사적인 조선왕조실록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태조가 수창궁에서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대왕 대비전에서 흥선군의 적자인 제2자에게 사위 시키라고 명하고 영의정 김좌근과 도승지 민치상을 보내어 잠저에서 봉영하여 오게 하였다.”

 

물론 『고종황제실록』과 『순종황제실록』이 있다. 그러나 이 두 실록은 일제가 검열을 하여 만든 실록이기 때문에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는 책이다.

조선시대에도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가 있어서 바로잡기도 하였다. 당쟁이 격렬할 때에는 집권세력 사관이 자기 당파에 유리하게 편찬하여 공정성을 잃게 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래서 집권세력이 바뀌면 이를 수정하기도 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선조수정실록』, 『현종개수실록』, 『경종개수실록』이다.

 

실록을 편찬할 때는 춘추관내에 실록청을 설치하고 영의정이나 좌의정, 우의정을 총재관으로 삼고 대제학과 이름 있는 문필가를 선발하여 기록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실록이 완성되면 처음 작성한 사초는 물로 씻어 없앴다.

 

 전주사고에 전시된 조선왕조 실록 필사본 

 

조선왕조실록은 1445년에 3부를 등사하여 4부를 만들어서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에 보관하게 하였다.

그런데 임진왜란 때에 춘추관과 충주, 성주의 3곳의 조선왕조실록이 불타버리고 말았다. 유일하게 전주의 실록이 남아 있게 되었는데 이는 목숨을 걸고 실록을 지켜온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태인의 선비인 안의와 손홍록이 1592년 6월에 왜군이 금산에 침입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재를 털어서 전주 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태조실록부터 명종실록까지 13대의 실록 804권과 기타 소장되어 있던 도서들을 정읍의 내장산으로 옮겨 놓고 다음해 7월 정부에 이관할 때까지 실록을 지켰다.

또한 동학농민군이 전주를 향하여 진군할 때에는 전주 사고에 있던 실록들을 완주 위봉산성으로 옮겨 보관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전주 사고의 실록들이 지켜지게 된 것이다.

 

그 후 1900년대까지 조선왕조실록은 오대산, 정족산, 태백산, 적상산에 사고를 설치하여 각 1부씩을 보관하게 하였다.

그중 오대산 사고의 실록은 일제가 일본으로 가져갔는데 광동대지진으로 소실되어 27책만 남게 되었고 적상산 본은 구황궁 장서각에 보관되어 있다가 1950년 한국전쟁 때 북한군이 가져가 현재 김일성 종합대학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정족산, 태백산 실록은 1910년 일제가 경성제국대학으로 이관하였다가 광복 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기전에 가면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사고가 있다. 통풍을 위해 나무로 지었고 습기를 막기 위해 기둥을 세워 공중에 띄워놓았다.

 

 경기전 안에 있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전주사고 건물

 

조선왕조실록은 가끔 밖으로 끄집어내어 바람을 씌웠다. 사고가 있던 경기전 뜰에 내어놓고 책마다 낱장을 일일이 넘기며 바람을 쐬었다. 그런데 실록은 내용이 외부로 누출이 되면 안 되는 문서였다. 일일이 낱장을 넘기며 글을 읽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여기에서 수수께끼를 내어보자.

실록을 끄집어내어 바람을 쐬는 일을 했던 사람들은 누구였으며 그 사람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누구는 중국 진나라 때 진시황제처럼 모조리 죽였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만일 발설을 하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고 엄포를 놓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전주사고에서 실록을 끄집어내어 낱장을 넘기며 바람을 쐬었던 사람들은 글자를 모르는 노비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죽음을 맞지도 않았다.

 

“성! 조선왕조실록이 전주 어디에 보관되어 있었는지는 알지요?”

“경기전 뜰에 있지.”

“그럼 그 앞에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요상스런 질문을 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드는 별난 취미를 가지고 있는 그 사람.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님. 그래도 결코 헛소리가 아닌 좋은 자료를 제공하는 소리이니 귀담아들을 수밖에 없다.

 

그의 말에 따라 경기전 위쪽에 있는 한국전통문화전당의 뜰을 뒤지다 보니 자그마한 돌비가 하나 서있다. 거기에 "조선왕조실록 봉안터"라고 쓰여 있고 이곳이 조선왕조실록을 처음 봉안한 "승의사" 자리라고 한다. 이곳에 태조, 정종, 태종의 3대 실록이 봉안되었던 곳이라고 쓰여 있다.

그랬구나. 그런데 천 선생은 어떻게 그런 것까지 알고 있지? 좌우지간 사학자는 사학자다.

 

 한국전통문화전당 뜰에 서 있는 조선왕조실록 봉안터 돌비

 

지금 전주사고에 실록은 없다. 그러나 그곳이 개방되어 있어서 언제라도 찾아가 전에 실록을 어떤 곳에 보관했는지 볼 수 있고 실록에 대한 여러 가지 안내 자료도 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기록을 하였던 472년의 조선왕조실록은 중국의 대청역조실록의 296년을 훨씬 앞선다. 국보 제151호이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우수한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였던 경기전 사고를 꼭 한 번 가보기를 권한다.   

이용만 기자 ym60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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