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부성은 얼마만큼의 크기이며 동서남북 대문은 어디에 있었는가?
전주에서 살고 있으면서 그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것이기에 전주부성을 한 번 둘러보기로 한다. 어렵지 않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전주부성이고 네 개의 문이다.
먼저 전주부성의 첫째 관문이었던 남문은 풍남문(豊南門)이라 불렀으며 지금 그대로 남아 있다. 풍남문은 보물 308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유재란 때에 불타버린 것을 영조 44년인 1768년 전라감사 홍락인이 다시 세운 것이다.
남문 밖은 전주부성 밖인 것이다. 그러니까 남문시장은 전주부성 남쪽 밖에 있었다. 1767년 정해년 대화재로 남문이 불타버려 홍락인 관찰사가 중건하고 중국 한나라의 고조의 고향인 풍패(豐沛)의 풍자를 따서 풍남문이라 하였다.
서문은 본래 상서문이라 하였는데 1767년 정해년 대화재로 소실되어 버렸다. 같은 해 9월에 홍락인 관찰사가 이를 중건하고 풍패의 패자를 따서 패서문(沛西門)이라 불렀다.
서문은 동학농민 혁명 때에 동학농민군이 전주부성으로 진입한 문이 지금의 서문교회 바로 안쪽 길에 “전주부성 서문지” 안내판이 서 있다. 충경로의 서문승강장 남쪽 길이고 서문교회 안쪽 길이다. 그러니까 서문교회는 전주부성 서쪽 밖에 있었다.

전주부성 서문지에 대한 안내둔
북문은 공북문(拱北門)이라 불렀으며 시청 앞 5거리 영화의 거리 입구의 광장에 “전주부성 북문지” 안내판이 서있다. 지금의 중앙시장은 전주부성 밖이었다. 이곳은 임금님 계시는 북쪽을 향하는 문이며 한양으로 가는 문이었다. 공북문(拱北門)에서 공(拱) 자는 두 손 맞잡을 공(拱) 자다.
조선시대에 전주부성에서 가장 귀하게 여겼던 문은 북문이었다. 전주는 조선을 탄생시킨 곳이다. 그래서 조선시대의 전주는 한강 이남에서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었다. 당시에 전주는 한양과 평양과 함께 조선의 3대 도시였다.
북문은 북쪽에 계시는 임금님을 향한 문이기 때문에 함부로 드나들지 못했다. 심지어는 전라감사를 비롯한 수장들이 취임을 할 때에도 북문을 통해서 들어온 게 아니라 서문을 통해서 들어왔다.
동문은 완동문(完東門)이라 불렀으며 지금 우리가 동문 사거리라고 부르는 지점에서 약간 동쪽으로 “전주부성 동문지” 안내판이 서 있다. 지금의 기린로는 전주부성 밖이다.

전주부성의 위치에 대한 안내도
이렇게 동서남북 네 개의 문을 중심으로 모서리가 둥근 사각형을 그려보면 전주부성의 윤곽이 드러난다.
네 귀의 모서리는 동북쪽으로는 건강보험공단과 한국전통문화전당부근이고 북서쪽으로는 영화의 거리 옥토주차장 부근이며 동남쪽으로는 전주중앙초등학교 부근이고 남서쪽으로는 서문승강장에서 전라감영 2길과 풍남길 2길을 따라 남문과 이어진다.
전에 전주우체국이 있던 경원동 우체국을 중심으로 사방이 400m에서 450m 정도 되는 북쪽 변이 길고 남쪽 변이 짧은 역사다리꼴 모양인 것이다.
전주부성은 호남에서는 가장 큰 성으로 이미 고려시대 공양왕 원년인 1388년부터 최유경 전라도관찰사가 축성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 후 조현명 관찰사가 크게 고쳐 짓고 동서남북에 4대문을 설치하였다. 조선시대 『세종실록 지리지』에 의하면 전주부성의 크기가 1,288 보라 하였는데 조선 후기의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2,618 보라하였다. 이는 초기의 두 배 정도 늘어난 것이며 이를 계산하면 4,760m 정도가 된다.
전주부성이 이렇게 커진 것은 영조 9년인 1733년에 전라감사 조현명이 성을 보수할 때 확장하여 축조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유서 깊은 전주부성이 1907년~1909년 사이에 조선통감부에 의해 모두 헐려버리고 남문만 남아 있는 것이다.
현재 남문인 풍남문 2층 누각에 결려 있는 호남제일성(湖南第一城)의 글씨는 헌종 8년인 1842년에 종 2품 전라감사로 부임한 서기순의 글씨라고 한다.
전주부성은 제주도를 포함한 전라도를 치리했던 전주의 위상을 나타내는 곳이다. 호남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통괄하던 전라감사가 머무르는 곳이었다. 비록 세파에 밀려 전주가 작은 도시가 되어버렸지만 그 기상만큼은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전주부성의 옛 자취를 더듬어 보면서 전주의 과거와 미래를 생각해 보는 것도 전북 도민의 지긍심을 간직하는 일이 아닌가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