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전이라고 해서 넓은 전시장에서 많은 작품을 걸어놓고 하는 것만이 좋은 미술전은 아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보아주느냐 이다.
김하윤 화가는 2014년부터 '느린 꽃놀이 연작전'을 펼쳐왔다.
김하윤은 작업의 과정을 통하여 삶의 길목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의문들을 생의 변주가 생동하는 자연으로부터 더듬는 과정이며 이에 대한 사유를 알레고리적 방식으로 정제한 작업을 해왔다.
집도 없이 나그네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나무늘보는 작가 스스로의 표상이며 저마다 다른 모양새로 어디론가 곧게 벋은 나뭇가지들을 딛고 또 디디며 살아가는 매일의 걸음걸이요, 눈앞에서 끝없이 펼쳐지는 여행길이라 했다.
비슷비슷하지만 각기 다른 몸짓으로 새로운 시공간을 향해 울퉁불퉁 벋은 형상은 꿈속을 유유자적 거닐며 정글사회로부터의 자유를 탐닉하지만 늘 실체 없는 위협과 염려에 고민을 더하며 이리저리 살아가는 오늘날의 작가의 모습을 담았다.

설렘과 의심, 용기와 두려움, 기쁨과 고독, 후회와 염려 등 수많은 궁금증들이 얽히고설킨 이 어지러운 방랑길에서 순간순간 만나는 창조주의 사랑과 자연의 섭리, 매일 만나는 사건들 속에서 넘실대는 사랑과 슬픔, 계절과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빛과 그림자의 유희는 예쁜 노랫말을 엮어주고 품에 안아주어 모든 꽃들이 움트고 피어나고 열매 맺히어 익어 떨어지며 구르고 멍들고 썩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생(生)과 연(緣)의 이면을 깨닫게 한다는 것이다.
어떤 생의 씨앗을 품은 존재이자 서사를 맺는 결실이기도 한 열매들은 내가 일상의 길에서 경험하고 얻게 되는 몫을 뜻하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의 내면과 이면에서 발견되는 마음을 은유한다. 주워 얻은 마음이랄지 굴러온 우연과 알맞게 익었을 때를 알아채는 눈치, 어떤 것을 골라 수집할지 판단해 손에 넣는 요령과 같이 다양한 삶의 열매들은 마음의 심연에서 떠돌고 서로 지탱하며 균형을 잡기 위해 애쓰는데 이내 무너지곤 하는 절망의 반복일지라도 용기를 내어 다시 시도하는 욕심 어린 장난질을 계속한다.

계속되는 고단한 여행길에서 나를 기쁘고 놀랍게 하는 것은 아주 작은 세계로부터 거대한 이 세계에 대한 미미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하나둘 모인 실마리들은 나를 자꾸 부추겨 더욱 불분명한 세계로 이끌고 계속해서 어딘가로 향하여 떠나도록 한다는 것이다.
화가 김하윤은 전북대학교 미술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전일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단체전 및 기획전을 40여 회 열었으며 개인전을 4회 열었다. 이번에 전시된 “느린 꽃놀이 Ⅲ : 울퉁불퉁 간다”는 삶 속에서의 사유를 즐기는 작가의 표상을 나무늘보에 은유한 연작이다. 일상의 여행길에서 발견하는 아름답고 무한한 생과 인연, 그 이면에 대한 감흥을 이야기하고 있다.
김하윤은 2019년 전북문화관광재단 순수예술작가 아트상품 개발지원 사업에 선정되어 지원을 받았으며, 2020년에는 전북문화관광재단 국제문화예술교류 지원 사업에 선정되었고, 2022년에는 전북문화관광재단 지역문화예술육성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보통의 작가들이 지원받기 어려운 지원을 계속 받으면서 창작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작가다.
김하윤 작가의 자품에는 장난기 가득한 나무늘보가 나온다.
민들레 꽃씨 속에서 놀고 있는 나무늘보가 있는가 하면 꽃씨 하나를 잡고 하늘을 날고 있는 나무늘보가 나오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꽃 속에 몸을 숨기고 얼굴만 내놓은 나무늘보도 있고 노랗게 핀 민들레 꽃대를 잡고 올라가고 있는 나무늘보 두 마리의 모습도 보인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녀석도 있고 열매를 움켜쥐고 있는 녀석도 있다.
어떤 그림에는 숨은 그림 찾기처럼 아주 작은 나무늘보가 숨어 있기도 한다.

작가에게 나무늘보는 무엇인가?
나무늘보는 작품 세계를 이루는 모티브다. 느린 꽃놀이의 주인이다. 작가가 여리디 여린 꽃을 가지고 놀 수가 없으니 대신 놀아주는 파트너다. 느리게 가고 울퉁불퉁 가는 모델이다.
느림에 대하여 금방 피었다 지는 꽃을 등장시키고 거기에 나무늘보를 등장시켰다. 꽃은 열매가 되고 열매에서 싹이 나고 자라서 다시 꽃이 피는 과정 속에서 세월이 가는데 나무늘보는 그 꽃을 가지고 놀고 있다. 심지어는 민들레 꽃씨를 타고 하늘을 둥둥 떠가기도 한다.
사진과 그림은 다르다. 사실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사진에서는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하고 깊은 정을 그림에서는 나타낼 수 있다. 한 뼘의 종이 위에 백리 밖 풍경을 담으며 보이지 않는 작가의 숨결소리도 그려낼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김하윤 작가는 이번 개인전의 주제를 “느린 꽃놀이 : 울퉁불퉁 간다”로 잡았다. 울퉁불퉁한 길에서는 느리게 갈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초스피드로 치닫는 세상에서 어째 울퉁불퉁 가고자 하는가? 거기에서 무엇을 찾으려 하는가?
해답을 찾고자 하는 사람은 금암도서관에서 4월 24일까지 열리는 “김하윤 개인전”을 한 번 둘러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