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소양의 도술가 국사철과 이서구의 도술

전라도관찰사 이서구의 전설적인 기행

작성일 : 2023-04-02 04:59 수정일 : 2023-04-03 10:19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조선시대에 완주군 소양면에 국사철이라는 도술을 부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도술은 상당한 수준이어서 이미 소문이 나 있었다.

어느 날, 풍수와 역학에 밝은 이서구가 전라도관찰사가 되어 전주에 온다는 소문을 들은 국사철은 이서구를 한 번 골탕을 먹이려고 마음먹었다.

 

이서구가 논산을 지났다는 말을 들은 국사철은 삼례 비비정에서 둥구나무로 변신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에는 전주를 가려면 이곳을 지나가야 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나갈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서구가 나타나지 않았다. 둥구나무가 되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국사철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소금장사였다. 소금장사는 들고 온 작대기를 둥구나무 뿌리에 꼭 집어넣고는 지게를 받혔다. 그런데 그곳이 둥구나무로 변신한 국사철의 엄지발가락이었다. 작대기의 끝에는 쇠를 박아서 뾰쪽했다. 끔찍이 아픈 것을 가까스로 참고 있는데 이번에는 담뱃대를 물고 불을 붙여 뜨거운 곰방대의 재를 겉으로 드러난 뿌리에 툭툭 치는 것이었다. 그곳은 국사철의 발등이었다.

발가락이 아프고 발등이 뜨거운 국사철이 마침내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소금장사가 말했다.

“이놈아, 전라관찰사로 부임하는 사람에게 무슨 장난을 치려고 하느냐? 그것을 알고 이서구는 진즉 이곳을 지나갔다.”

그때에야 국사철은 이 소금장사가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깨닫고 정체를 밝히고 사죄를 하였다. 그러면서 자기가 이곳을 지키고 있었는데 언제 지나갔느냐고 물었다.

“조금 전에 벌떼가 지나갔는데 그게 이서구와 그 일행이 벌로 변신하여 지나간 것이다.”

 국사철이 둥구나무로 변신해 이서구를 기다리고 있었던 삼례의 비비정

 

그 말을 들은 국사철은 이서구가 자기보다 도술이 월등함을 알고 걱정을 했다.

“이서구가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니 어찌하면 좋겠소?”

“이서구는 전라도관찰사이니 충청도로 도망을 가시오.”

이 이야기를 들은 후세 사람들은 국사철을 혼내준 소금장사가 바로 이서구였다고 말한다.

 

소금장사의 말을 들은 국사철은 충청도로 도망을 가기 위하여 금산을 지나가고 있었다. 어느 주막집에서 쉬고 있는데 한 무리가 걸판진 밥상을 받아서 먹고 있었다. 주막집 밥상이 아니라 잘 차려진 밥상이었다.

“어지간히 먹었으니 밥상을 돌려보내세.”

그리고는 도술을 부려 밥상을 돌려보내려는데 밥상이 가지를 않고 있었다. 한참 힘을 쓰던 그 사람들이 둘레를 살펴보니 저만큼에 시치미를 뚝 떼고 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국사철을 알아보고 자기들이 잘못했으니 밥상을 돌아가게 해 달라고 사정을 했다.

그들은 평양감사의 밥상을 훔쳐다가 먹고 있었던 것이다.

국사철은 밥상을 준비했던 아전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라고 타이르며 밥상이 돌아가게 해주었다.

 

이 이야기는 국사철이라는 사람이 대단한 도술꾼이라는 것을 알려주면서 이서구의 도술 또한 대단하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이서구가 혼이 났던 이야기도 있다.

고창 선운사의 도솔암 마애불의 복장에서 비서(祕書)를 꺼낼 때의 이야기다. 이 책을 꺼내는 사람은 벼락을 맞아 죽게 된다고 하였다. 이서구는 자기의 힘을 믿었다. 그래서 마애불 복장에서 비서를 한 권 꺼냈다. 그러자 벼락이 떨어졌는데 이서구는 그 벼락을 막아내어 죽지 않았다.

그래서 안심하고 책을 꺼내어 펼쳐보았다. 그런데 첫 장을 펴본 이서구는 사색이 되어 얼른 책을 덮고 다시 복장 속에 넣어 봉인을 하였다. 거기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전라감사 이서구가 억지로 열었다.”

 

죽지는 않았지만 이서구는 너무도 놀라 다시는 그 책을 꺼내볼 생각을 못했다. 그런데 그때부터 또 다른 소문이 떠돌았다. 벼락은 이미 이서구가 맞았으니 그 책을 꺼내도 벼락을 맞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감히 책을 꺼낼 생각은 못했다.

 

 이서구가 억지로 열다가 혼이 난 고창 선운사 마애불

 

그 후 1894년 동학 농민 봉기가 일어났다. 그때 동학농민군은 총을 맞아도 죽지 않는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것은 선운사 마애불의 비서(祕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 했다. 

이미 이서구가 벼락을 맞았으니 다시 벼락이 내리지 않는다며 동학농민군 대장이었던 손화중이 마애불의 복장에서 비서를 꺼내었다고 한다. 손화중은 이상한 보따리를 들고 다녔는데 사람들은 그 보따리 속에 마애불의 신비한 책이 들어 있다고 믿었으며 손화중을 따라다니면 죽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무리들이 손화중을 따랐다고 한다.

 

고창 선운사 도솔암 마애불 복장에서 책을 꺼내어 그 내용이 세상에 알려지면 조선이 망한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조선은 동학농민혁명 봉기를 기점으로 국운이 기울어져 갔고 마침내 일본 세력을 끌어들여 동학농민군을 평정했지만 일본에게 망하고 만 것이다.

마애불의 복장 안의 비서는 결국 내용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채 조선 멸망의 전설이 되고 말았다.

 

선운사가 세워진 것은 백제 위덕왕 24년인 577년이다. 이때에 백제의 고승이었던 검단선사가 비밀스러운 책을 만들어 마애불의 가슴에 감추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마애불은 백제시대 만들어진 것이다. 혹자는 신라 시대라고도 하고 조선시대라고도 하는데 백제 시대가 맞을 것이다.

 

어찌 보면 전라도관찰사 이서구가 선운사 마애불에서 비서를 꺼내려고 하다가 벼락을 맞아줌으로써 숨겨진 책이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다.

그때에 어차피 벼락을 피했으니 꺼낸 책을 샅샅이 뒤져서 읽었더라면 이서구는 또 다른 세상을 펼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전설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긴다.

 

이서구는 전라도각지에 선정을 베풀었고 많은 이야기를 남기면서 전라도의 전설 속의 인물이 되었던 것이다.

 

이용만 기자 ym60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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