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 금마의 작은 냇물 옥룡천(玉龍川)에서 용을 잡다

냇가 양쪽에 서 있는 석조여래입상

작성일 : 2023-05-02 07:45 수정일 : 2023-05-02 09:33 작성자 : 이용만 기자

 

 

 

“오늘은 도랑으로 갑시다.”

“무슨 가재 잡을 일 있나? 도랑은 무슨 도랑?”

“도랑은 도랑이로되 보통 도랑이 아니지요. 옥룡천(玉龍川)이니까요.”

“옥룡천(玉龍川)이라면 용이 살았다는 건가?”

“그럴 것 같은데 아무런 기록이 없으니 거기 가서 한 번 찾아봅시다.”

 

어디든지 꺼리만 있으면 가야한다는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

 

옥룡천(玉龍川)은 익산시 금마면 고도리에 있는 아주 좁은 도랑이다. 폭이 10m도 안 된다. 이런 도랑에서 무슨 용이 살아?

두리번거리는 눈길에 냇가 저쪽에 서 있는 기다란 석조물이 들어온다. 부리나케 달려가 보니 석조여래입상이다.

 

 옥룡천 좌우에 서 있는 석조여래입상

 

이게 보물 제46호란다.

높이가 4.24m나 된다. 일직선에 가까운 길쭉한 사다리꼴인데 머리에 관을 쓰고 있고 그 위에는 사각형 보개(寶蓋)가 있다. 얼굴도 사각형인데 볼이 조금 둥글다. 턱은 조금 튀어나왔다. 목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얼굴도 평면에 가까운데 코도 작고 입도 작다. 가는 눈썹과 눈이 그려져 있다. 귀도 작지만 길게 그려져 있다. 몸통은 기다란 사각기둥인데 옷자락의 모습은 시늉만 내었다. 그래도 양 어깨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와 발목에서는 좌우로 갈라져 측면까지 이어져 있다. 옷의 주름이 있어 옷을 입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손도 있는데 앞으로 모아 배에 붙어 있다.

 

대좌가 있고 대좌를 밟고 서 있다. 대좌는 몸통보다 조금 크게 앞으로 튀어나와 있다. 전체적인 몸통은 약간 아래가 넓고 위가 좁은 사다리꼴이다. 아주 단순하고 꾸밈이 없다. 다만 한 가지 입의 모양이 특이하다. 약간 웃음기를 머금은 듯한 모나리자의 웃음을 간직하고 있다.

 

이 석조여래입상은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이며 조선말까지 땅에 넘어져 방치하고 있었다. 그것을 익산군수 최종석이 일으켜 세웠다고 한다. 

 

고려 때까지 성행하던 불교문화가 조선에 들어와 핍박을 받으면서 땅속으로 들어갔다가 발견된 것이 적지 않다. 정교하고 화려한 것이야 지금까지도 보존이 되었을 테지만 볼품없는 작품들은 오히려 땅에 묻힘으로써 없어지지 않고 보존되었다가 귀한 문화재가 된 것들이 많다. 

 

석조여래입상이 봉분처럼 둥근 흙더미를 쌓아 올린 곳에 서 있는 것으로 보아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부처님 모습이라기보다는 무덤을 지키는 석인상이거나 마을을 수호하는 수호신으로 세웠던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가 아니고 또 하나 있다. 도랑을 건너 서쪽에 또 하나가 서 있는 것이다. 서쪽 석조여래입상은 동쪽 것과 거의 같은 모양인데 입술의 미소가 다르다. 여기에 서있는 석조여래입상의 입은 여인이 웃고 있는 모양이다. 분명 동쪽 것과 다르다.

 

 서쪽에 서 있는 석조여래입상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다

 

양쪽의 석조여래입상은 남과 여가 분명하다. 그렇다면 무언가 이야기가 있을 법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 두 개의 석조여래입상은 일 년에 한 번씩 섣달 그믐날 밤에 만나 일 년 동안의 회포를 푼다고 한다. 그리고 닭이 울면 제자리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운데 있는 옥룡천(玉龍川)은 무엇인가? 왜 두 개의 석조여래입상이 마을이 아닌 옥룡천을 마주보고 있을까? 그만큼 옥룡천이 귀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옥룡천(玉龍川)이라는 큰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이 작은 냇물의 이름은  크고도 귀한 이름인 옥룡천이다. 

 

용(龍)은 임금을 상징한다. 이곳은 백제말의 수도로 정하려 했던 곳이다. 백제 무왕의 발길이 수없이 닿았던 곳이다. 왕이 이곳을 수시로 드나들었을 것이다. 어느 날 왕이 목이 마려워 물을 찾았는데 물이 없었다. 마침 이곳 옥룡천 한쪽에 샘물이 있어 그 샘물을 떠다 주었더니 물맛이 좋다며 도랑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름이 없다 하였더니 왕이 옥룡천(玉龍川)이라 부르라고 명하여 그때부터 옥룡천(玉龍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리고 양쪽에 옥룡천을 지키는 수호신을 세웠는데 그게 바로 석조여래입상이다.

다만 고려시대 작품의 특징을 가진 것은 백제시대부터 있었는데 무슨 일로 하실이 되어 고려시대에 다시 세운 것이다.

 

“재야 인문 사학자 천박사,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근사하지 않은가?”

“근사한 것이 큰일을 낼 일이지요. 역사적 고증은 정확한 고증 없이 함부로 만들어 내면 안 됩니다. 잘못하면 역사의 죄인이 됩니다.”

역시 사학자 자격이 있다. 그는 사학자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고증없이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룻강아지인 내가 내 멋대로 상상한 것은 나 혼자의 생각으로 그쳐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새겨둔다.

 

이용만 기자 ym60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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