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무엇을 보았기에 그리 했을까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에서

작성일 : 2023-05-09 22:39 수정일 : 2023-05-10 08:49 작성자 : 이용만 기자

 

 

그들은 무엇을 위하여 목숨을 초개같이 버렸는가?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모두 죽을 줄 뻔히 알면서 무엇을 위하여 죽음의 길을 선택했는가? 효도를 제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 자기로 인하여 부모가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이 가족들이 다 죽을 길을 택하여 걸어갔는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익산의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를 가보아야 한다. 그곳을 찾아가는 데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사전에 이리저리 자료를 준비하고 혼자서 사전답사까지 마친 후에 나를 부르는 충성스러운(?) 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작성한 기사는 거의 그의 봉사의 힘을 얻는다. 그는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님이다.

 

숲정이라는 말은 마을 근처의 숲이라는 말이다.

천주교 박해 때에 동헌에서 멀지 않고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을 장소를 물색하다 보니 숲정이를 선택한 것이다. 전주 숲정이도 그렇고 익산 여산의 숲정이도 그러한 이유로 천주교인들의 순교지가 되었다.

 

이곳 여산 숲정이 순교성지는 여산 동헌 부근의 숲정이로 병인박해 때에 천주교인들을 처형하던 곳이다.

병인박해(丙寅迫害)는 1866년부터 1871년까지 계속되었던 조선 최대의 박해 사건이다. 이때에 전라도 천주교인들은 전주와 여산, 그리고 나주에서 처형되었다.

1866년 여산 관아에 잡혀온 천주교인들은 금산, 진산, 고산 등지의 심산유곡에 숨어 살던 교인들이었다. 여산에서는 1868년에 처형이 이루어졌는데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25명이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천주교인 처형이 이루어졌던 여산 동헌 마당 자리 

 

당시에 전라도에는 5개의 진영이 있었다.

전주에 중진영, 운봉현에 좌진영, 나주목에 우진형, 순천부에 전진영, 그리고 여산현에 후진영이 있었다.

여산현의 후진영은 전라도의 북쪽을 관리하는 곳으로 현감은 사형집행권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연고로 이곳에서 천주교인들의 처형이 이루어진 것이다.

당시에 여산현의 동헌 앞에서 이루어진 천주교인 처형은 백지사(白紙死) 방법이었다. 죄인을 묶어 놓고 얼굴을 백지로 덮고 물을 뿌리는 것이다. 처음 한 두 장이야 숨을 쉴 수가 있지만 여러 장이 겹쳐지면 숨을 쉴 수가 없어 질식사하는 것이다.

이곳에서 이루어진 백지사 처형 외에 배다리 옥터에서는 목을 줄에 매달아 죽이는 교수형이 이루어졌고 시장 부근에서는 칼로 목을 쳐 죽이는 참수형이 이루어졌다.

이때에 김성첨, 김정규, 김면언 등이 처형되었으며 전주 숲정이 순교자 다음으로 많은 순교자가 나왔다.

 

숲정이 순교성지 근처에 여산성당이 있다. 1958년 10월에 여산 숲정이 성지 안에 성당을 설립하여 여산 순교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성지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안내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익산지역 순교자들을 위한 여산 성당

 

이곳에 순교자의 모후관이 있었다. 여산 순교 150년을 기념하여 순교자의 모후께 봉헌된 건물이다. 모후란 본래 임금의 어머니를 일컫는 말이다. 기독교에서는 왕 중의 왕인 예수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를 일컫는다.

 

순교자 쉼터로 '무명순교자관'이 있다. 안으로 들어서니 넓은 공간에 긴 탁자와 의자가 있다. 성지를 찾아온 손님들이 차를 마시면서 쉬었다 갈 수 있는 곳이다. 성지 기념품을 구입할 수도 있다.

관리인을 찾으니 사람 좋아 보이는 남자가 나타난다. 그에게 말을 붙여 이야기를 꺼내게 하는 재주가 재야 인문 사학자 천판욱 선생에게 있다.

그의 할머니가 전해준 이야기라며 들려준 이야기가 가슴을 찌른다.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 천주교인들을 가두어 두는 옥이 있었는데 그들은 천주를 부인만 하면 살려준다 해도 요지부동이던 사람들이라 한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무엇을 보았기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던가? 그들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은 무엇을 보았기에, 무엇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는가?

 

그런데 더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다. 천주교인들을 사형 집행일에 옥문을 열고 사형장으로 끌고 가는데 길가에 난 풀을 허겁지겁 뜯어먹었다는 것이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고 아무것도 먹을 것을 주지 않고 굶겼던 것이다. 그들은 지금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길이다. 잠시 후면 죽을 사람들이다. 그래도 먹는다는 본능에는 어쩔 수 없었던가 보다. 배고픔의 고통과 인간 본능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행동을 보는 것 같아 울컥 아프고 서럽다.

 

이 광경을 어떻게 설명할까? 종교는 무엇이며 신앙은 무엇인가? 그리고 인간의 본능은 또 무엇인가?

돌아오는 길 내내 머릿속을 점령하고 있는 무명순교자관 관리인의 이야기가 나를 혼란스럽게 한다.

 

 

이용만 기자 ym60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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