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부여를 '시'인 줄 안다.
그러나 부여는 아직도 읍이다.
충청남도 안에는 대전직할시와 세종특별자치시가 따로 있으며 천안시, 아산시, 공주시, 계룡시, 논산시, 보령시가 있다.
충청남도의 행정구역 절반이 시인데 유독 부여만은 아직도 시가 되지 못하고 읍으로 남아 있다.
백제시대에 왕도였던 부여.
한때는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한반도를 지배했고 일본은 물론 중국에까지 속국을 만들어 천하를 호령하던 동아시아의 대국이었던 백제의 왕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작은 옛 고을로 남아 있다.
부여 사람들은 마음이 편치 않다.
그렇잖아도 신라의 왕도였던 경주가 옛 유물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데 반해 부여는 망가질 대로 망가져 돌로 된 것 외에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이 없는 초라한 모습에 속이 상한데 지역 발전마저 제자리걸음이니 더 속이 상한다.

부여박물관에 있는 백제시대의 유물들
경주에 있는 왕릉들은 모두가 이름이 있다.
그러나 부여나 공주에 있는 왕릉들은 이름이 없이 번호만 매겨져 있다. 왕릉을 파헤쳐 유물을 모조리 가져가버려 누구의 무덤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1호, 2호, 3호… 번호만 있다.
백제가 망하자 신라군들이 들이닥쳐 궁궐이고 유적이고 모조리 불태웠고 왕릉이고 뭐고 마구 파헤쳐 버린 것이다. 그것이 일제 강점기까지 계속되었다. 백제의 왕릉은 누구나 파헤쳐도 되는 동네 공동묘지의 이름 없는 묘에 불과하였던 것이다.
특히 일제 강점기 때에 일본사람 가루베 지온은 교사를 빙자하여 공주와 부여에 와서 파헤친 무덤이 자기 말로 1,000개는 된다고 할 정도였다. 그는 한국에 와서 일본어를 가르친다는 명목 하에 교사의 탈을 쓴 도굴꾼이 되어 공주와 부여의 무덤들을 난장판을 쳤다. 그리고 일본이 항복을 하자 재빨리 유물들을 일본으로 밀반출해 버렸다. 참으로 나쁜 일본인 가운데 가루베 지온을 빼놓을 수 없다.

한쪽이 무너져내린 탑처럼 백제의 상처는 아직도 남아 있다
부여의 발전을 막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만난 부여 사람은 이런 말을 들려준다.
“사람들은 부여 사람들은 ‘백제’ 때문에 먹고 산다고 하는데 ‘백제’ 때문에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바로 백제의 유물 때문이죠. 땅만 파면 유물의 흔적이 보이니 집 한 채 지을 수가 없어요. 아파트 한 동 지을 수 없고 공업단지는 생각도 못하지요. 땅을 1m만 파도 유물이 나오고 10m 속에서도 유물이 나오니 무슨 일을 할 수가 있겠어요.”
그로 인해 아무런 개발을 할 수가 없게 되어 옛 것을 고스란히 안고만 있어야 하는 처지가 된 사람들이 부여 사람들이란다.
또한 백제로 인한 수많은 억울한 누명을 다 쓰고 살아야 한다고 한다. 백제를 지키지 못한 사람들, 방탕하고 사치에 눈이 어두운 의자왕의 후예들, 삼천궁예의 후손들, 소정방의 낚싯줄에 걸린 나약한 용을 믿었던 사람들…
전에 없던 부여의 관광지로 ‘백제문화단지’가 있다. 백제에 대한 모든 것을 한데 모아두었다고 볼 수 있다. 백만 평 규모라 한다. 며칠 동안 여러 곳을 다니지 않아도 한 곳에서 백제의 유적지 모형을 다 볼 수 있는 곳이다.
어찌 보면 새로운 관광지를 만들어낸 것이다.

새로 조성된 백제문화단지 조감도
부여 사람들.
산업 개발 못한다고 불평하지 말고 대신 이렇게 다른 지역에서는 할 수 없는 문화관광단지를 개발할 수 있으니 이로 대신하면서 마음을 달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