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시대에 창건한 미륵산 석불사

영험한 석불좌상 앞에 서면

작성일 : 2023-07-06 08:55 수정일 : 2023-07-06 10:15 작성자 : 이용만 기자

 

 

 

들판에 우뚝 솟은 산은 영산이라 했다.

대표적인 산이 호남평야 한복판에 우뚝 솟아 있는 해발 429.4m 익산의 미륵산이다. 이미 미륵사지를 통하여 뒤에 있는 산이 미륵산인 줄은 알고 있지만 그 산 속으로 들어가 보지 않은 사람은 그냥 미륵사지 뒷산일 따름이다.

 

미륵산은 영산이다.

공주를 지나서부터 시작된 너른 벌판이 고창 선운산까지 장장 100km를 달려오는 것이 호남평야다. 폭도 50km에 달한다. 그 중간에 익산의 미륵산이 있다.

 

  미륵산 산속에 있는 백제 시대의 절인 석불사 

 

형님, 익산에 미륵산이 있지요? 그 미륵산 산속으로 들어가 보았나요?”

산속을 들어가 보지는 않았는데.”

그럼 미륵산에 대하여 말을 못하지요. 산속에 한 번 들어가 봅시다.”

재야 인문사학자 천판욱 선생님의 성화로 미륵산 뒤쪽을 가보게 되었다.

 

미륵산은 산속으로 들어가 보면 이 산이 과연 영산임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미륵사지 쪽에서 보면 그냥 밋밋한 산이다. 그러나 뒤쪽으로 가보면 산줄기가 여러 갈래로 벋은 오밀조밀한 산이다.

 

그 가운데 석불사가 있다. 한국불교 화엄종인데 이곳이 화엄종 본산이기도 하다.

석불사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은 대웅전에 보물 제45호인 연동리 석불좌상을 모셔놓았는데 백제시대의 석불로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석불이며 부처님 뒤의 광배 또한 가장 큰 것이라 한다.

그리고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린다는 영험한 부처님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전쟁을 위시하여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까지 여러 차례 땀을 흘렸다는 것이다.

 

  석불사  대웅전에 있는 석불좌상

 

석불사는 백제 무왕 때 창건한 것으로 미륵사보다 앞선다고 한다. 그 후 폐찰이 되었는데 1963년에 석불이 발견되어 이를 보호하기 위하여 석불사를 지어 부처님을 모신 것이다.

 

그런데 발견 당시 머리가 없었다. 다른 부분은 온전한데 머리만 없는 것은 임진왜란 때에 이곳으로 진격한 왜군들이 안개 때문에 앞을 볼 수가 없었다. 사람을 풀어 알아본 결과 석불사에서 사람들이 모여 부처님께 왜군을 막아달라고 기도를 드리기 때문이라는 말을 듣고 가토 기요마사가 칼로 목을 쳐서 끊어놓았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목을 버렸는데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석불사 대웅전과 석탑

 

석불사의 사적비에 의하면 어느 신도의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내 머리를 보결(補缺)하여 달라는 계시가 있어 성심으로 기도한 결과 부근에서 불상을 발굴하여 보결 봉안하였다고 한다.

 

다른 절에는 일주문에 문이 없는데 석불사 일주문에는 대문이 달려 있다. 그리고 대문에 사천왕이 그려져 있다.

 

1976년 휴암 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이래 대웅전과 요사, 삼성각, 일주문을 세워 절로서의 품격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특별한 것은 석불좌상과 부처와 광배를 한 개의 돌로 만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석불좌상의 머리 부분을 제대로 복원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의 안을 놓고 고심 중이라고 한다. 하루빨리 머리 부분이 복원되어 본래의 모습을 찾기를 기원한다.

 

이용만 기자 ym609@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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